60여년만의 만남...첫 단체 상봉

60여년만의 만남...첫 단체 상봉

2015.10.20. 오후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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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태, 통일연구원 박사 / 김희준, 통일외교전문기자

[앵커]
60여 년 동안 꿈에도 그리던 남과 북의 가족들이 금강산 현지에서 첫 상봉을 하고 있습니다.

잠시 뒤에 첫 상봉 화면이 들어올 예정입니다.

잠시 뒤에 화면이 들어오는 대로 바로 저희가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박사, 김희준 통일외교전문기자 두 분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김희준 기자, 1년 8개월 만에 20번째 이산가족상봉, 조금 전에 우리 시간으로 3시 반부터 시작이 됐으니까 1시간 정도 단체상봉. 60여 년 만에 가족상봉이 진행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모두 몇 가족이 만나는 거죠?

[기자]
96명의 북측 가족이 찾는 남측의 가족 389명이 상봉장에 현재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북측은 96가족이 상봉신청을 했지만 거동이 불편하거나 해서 가족과 동반한 경우를 합쳐서 북측은 141명이, 그러니까 모두 남과 북의 가족 한 500여 명이 현재 단체상봉장에 앉아서 감격어린 60년 만의 재회를 하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바로 상봉장에서 화면이 송출되기도 했지만 요즘은 바로 현장에서 송출이 불가능하고요. 고성 현지에 있는 중계차를 통해서 금강산면회소에서 전달해 오는 화면을 1시간 정도 늦게 받게 돼있어서 잠시 뒤면 그 감격어린 상봉 장면을 저희가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빠르면 한 10분 만에 그림이 들어올 것 같기는 한데 그런데 지금 보면 거의 현장이 저희도 예상컨대 아마 눈물바다가 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2박 3일 동안 만나는데 떨어져 지낸 시간에 비하면 총 6번 만나는 기회가 있고 시간으로 합치면 12시간밖에 안 되더라고요.

가족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너무 야속하게도 짧은 시간이 아닐까 싶어요.

[인터뷰]
너무 잔인하죠. 사실 60여 년 동안에 흩어져 있는 그런 가족들. 또 이번 경우는 생사도 몰랐던 가족이 많다고 볼 수 있어요.

왜냐하면 이번 경우는 북측이 우리한테 이 남측에 있는 가족들한테 만나자고 하는 그런 케이스이기 때문에. 많은 남측의 이산가족들은 가급적 저쪽에 혹시 위해를 당하지 않을까, 자기 관계되는 가족들이. 그래서 애써 감춘 측면도 있거든요. 그런 것도 있고.

그다음에 죽었는지 살았는지 이것을 전혀 모르는 그런 상황에서 저쪽에서 아, 우리 이런 가족이 있으니까 만나겠다고 하니까 사실 감격이라는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겠죠. 그런 사람들을 이런 짧은 만남 속에서 그것도 2시간이다, 1시간이다. 무슨 인지를 앞에 놔두고 일정한 시간을 허용을 한다든가. 우리가 죄수도 마찬가지잖아요.

죄수도 일정한 시간만 딱 주고 자, 끝났습니다. 들어가세요. 이런 잔인한 행위들은 사실은 없어져야 되고 이제 발전적으로 좀더 정례화시켜서 필요할 때는 볼 수 있도록. 그렇기 때문에 사실 금강산에 남북 이산가족 면회소를 만들어놨죠. 사실 돈 많이 들여서 거의 호텔급에 준하는.

[앵커]
500억이 넘게 들었죠.

[인터뷰]
이게 그야말로 잔인한 이러한 상황에서는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기자]
왜 12시간인지 상봉일정을 간단히 설명을 드리면 현재 만나고 있는 첫 단체상봉 2시간 동안 이어집니다. 잠시 헤어졌다가 저녁 7시 반부터 2시간의 만찬 상봉을 갖게 되고요.

내일은 숙소에서 편안하게 각자 방에서 개별 상봉을 갖고 그다음에 오찬을 함께 합니다. 그리고 오후에 4시 반쯤에서 다시 단체상봉을 가지는데, 저녁식사를 같이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모레 2박 3일 만에 마지막 일정인 작별상봉. 참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한 말입니다. 작별과 상봉을 함께 붙여놨다는 것이. 그때 또 2시간 정도 하게 돼서 그나마 작별상봉이 그동안 1시간 동안만 진행이 됐지만 북측이 이번에 우리의 요구를 대폭 수용해서 2시간 정도로 모두 6차례 상봉에 12시간이 되는 거고요.

이 가운데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오늘 만찬과 내일 오찬 단 두 차례뿐입니다.

[앵커]
내일 점심?

[기자]
그렇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지금 정 박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오늘 만나는 가족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우리 남쪽에 우리 가족을 찾아달라고 해서 서로 연락이 돼서 이쪽에서 상봉단이 올라간 거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앵커]
다음 번 2차 때는 반대로 우리가 북측에 요청을 해서 북측의 가족들 중에 확인된 사람들이 만나는. 두 번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전체적으로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13만 명 됐다가 지금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정부가 이산가족을 구체적으로 통계내기 시작한 것이 1988년입니다.

그때 우리 정부의 이산가족 통합정보센터에 등록한 이산가족이 지금까지 13만명이 넘는데요. 그동안 6만 3000여 분이 이미 운명을 달리하셨고요. 그다음에 현재 6만 6000여 명의 가족이 남아있습니다.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이 가운데 80세 이상의 고령자가 절반이 넘고요. 특히 70세 이상으로 계산을 해 보면 80% 이상이 70세 이상의 고령자입니다.

평균수명으로 따져서 이분들의 기대 수명을 고려하면 10년 안에 그래도 상봉이 돼서 모두 다 한 번씩은 만나봐야지 모든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통계가 되는데 그렇다면 6만 6000여 명의 이산가족들이 10년 안에 상봉을 하려면 1년에 적어도 6000여 명 이상씩 만나는 상봉정례화가 이어져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현실적으로 정말 힘들지 않은 상황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렇다면 다만 할 수 있는 것이 일단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생사라도 확인을 해 달라는 것이 이산가족들의 요구입니다. 지금 현재 북측의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몰라서 이미 제사를 지내고 계신 분들도 계시고 또 이번 상봉단 중에서 보면 30여년간 제사를 지냈지만 살았다고 해서 만나게 되는 분도 있거든요.

그렇다면 전면적인 생사확인부터 이뤄져야 하고요.

직접 대면상봉이 어렵다면 서신 교환 등을 통해서 사진이나 서로 사연을 주고받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수시로 주고 받을 수 있게 해야 될 것 같고요.

나아가서 화상상봉. 지금 현재 대한적십자사가 남측에 열 몇 군데의 화상상봉 시설을 지어놨는데 영상을 통해서 확인을 할 수도 있고요.

전략적으로 남과 북이 서로 협의를 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직접만남이든 화상이든 편지든 어쨌든 생사확인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그런 마음을 가지고 계실 텐데요. 그렇게 고령화가 되다보니까 이번에도 이렇게 부모, 자식간에 만나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
그것도 한 10% 정도 밖에 안 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정례화를 한다. 이런 것들도 순서를 제한을 두면서. 사실 이런 분들은 지금 우선적으로 정례적으로 만나실 수 있게끔하는 것을 먼저 하고. 그다음에 단계적으로 다른 가족들로 넓혀나가는 이런 묘도 살려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사실 이산가족들이 금강산에서 2박 3일 동안 만나는데 여기에서도 헤어졌다 만났다 헤어졌다 만났다. 사실 이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어떤 면에서 개인적으로 달구는 그런 것도 있겠죠.

그래서 사실 이 방식 자체도 무슨 만찬이니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차라리 2박 3일 동안 좀더 자유스럽게. 그것도 물론 북한이 통제하는 그런 측면이 있다면 입회하에 하든가 해서 2박 3일 동안 보다 더 많은 얘기를, 왔다갔다할 수 있는 그런 걸로 바꿀 수 없겠느냐하는 그런 마음도 사실 있습니다.

[기자]
이번 남측 상봉단 389명 중에 80세 이상 고령자가 95%입니다. 그리고 북측에서 내려오신 96명의 모두 다가 80대로 고령화가 되신 상태거든요.

이 가운데 말씀하셨듯이 부자나 모녀나 직계가족이 만난 경우는 사실 다섯 가족입니다. 이번 1진상봉때는요. 이 가운데 직계가족 이렇게 나가는 것 같은데요. 이 가운데 최고령자는 북측의 여동생을 만나는 96살 김남규 할아버지인데 북측의 여동생을 내가 꼭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최근에 건강관리 때문에 하루에 세 번씩 밖에 나가서 운동을 했다, 이런 말씀도 하시더라고요.

[앵커]
우리나라에서 올라간 이산가족 중에 최고령자이신 거죠?

[기자]
1진에서입니다. 이번 1진 상봉에서 최고령자이고요.

이번 1진상봉으로만 보면 최고령자는 88살로 3명이 계십니다. 그리고 1진, 2진을 통틀어서 98살의 구상연 할아버지가 있는데 이 할아버지는 딸을 만나시는데 딸에게 사주겠다고 약속했던 빨간 꽃신을 준비해서 꼭 가슴에 안고 남은 2박 3일을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앵커]
가족들이 사연 없는 가족이 없을 거고. 이번에 20번째 이산가족 상봉이지만 당사자들은 사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만남이겠습니까?

제가 볼 때 가장 관심을 모으는 상봉 가운데 한 분일 것 같은데. 부부가 만나고 또 부자가 같이 상봉하는 그런 케이스가 있죠. 잠시 뒤 화면이 들어올 것 같은데 말이죠. 북한에서 오인세라는 할아버지가 오시고 남한에는 부인과 아들이 함께 갑니다. 결혼한 지 7개월 만에 헤어졌다가 65년 만에 만난다고 하죠.

[기자]
그렇습니다. 이순규 할머니 같은 경우는 남편과 단 6개월 20일. 7개월 동안만 딱 살고 그때 임신을 했고 그래서 그 남편이랑 헤어졌는데요. 그 남편을 기다리기 위해서 그동안 재혼도 하지 않고 남편만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배 속에 있던 아들을 실제로 보는 느낌, 또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를 직접 보는 마음은 또 어떨 것인지 저희가 감히 상상만 해 볼밖에인데요.

[앵커]
결혼식 때 신은 구두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고 해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앵커]
순정을 간직하고 있는. 결혼도 안 하셨고.

[기자]
재혼도 하지 않고 남편이 그 당시 가지고 있던 그 물건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할머니인데요.

[앵커]
그 화면 잠시 후에 보시게 될 것 같습니다.

[앵커]
지금 곧 화면이 들어올 것 같은데요. 남한에서 올라간 가족들이 선물을 준비를 했다고 하는데 그 선물도 보면 규정들이 있더라고요.

[인터뷰]
규정들이 있죠. 세세한 규정들이 사실 있는데.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노트북이라든가 전략물자에 해당되는 것은 못 갖고 가게 돼 있고. 그리고 또 일정한 기준이 있어요.

무게라든가 그런 것들이 또 제한이 되어 있고. 그러나 일반적인 생필품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비교적 좀 자유스럽게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했고, 또 현금. 지금은 1500달러 이상은 안 되는 것으로 지금 알려져 있는데 그런 식으로 일정한 한계는 어느 정도 두고 있습니다.

[앵커]
가족들이야 뭐든지 갖다주고 싶은 그런 마음일 텐데요.

[인터뷰]
그것을 얘기한다면 저는 북측에 사실 수차례 왔다갔다 했습니다마는 제가 갈 때마다 제가 마트에 먼저 들어갔습니다. 마트에 들어가서 그야말로 생필품에 해당되는 것들. 칫솔도 좋고 치약도 좋고. 그다음에 애들 과자도 그렇고. 그다음에 또 중요한 게 뭐냐하면 저게 사실 우리도 어릴 때 그랬습니다마는 겨울에 추우면 손이 막 갈라지고 그런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소위 핸드크림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넣어서 간다든가. 그외에도 보다 더 긴박한 것은 사실 쌀이겠죠. 식량, 이것을 우리가 또 가지고 갈 수가 있다면 진짜 바리바리 사서 갖다드리고 싶은. 그거야 뭐, 물어도 무상할 정도로 그런 중요성이 사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갈 때마다 그것이 첫째 북측 자체에서 이것을 제한을 하고 또 우리측 입장에서도 여러 가지 사안 때문에 또 제한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죠.

[앵커]
뒷이야기입니다마는 이번 선물꾸러미 중에 초코파이가 가장 많았다고 하던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개성공단이 운영되기 시작한 뒤 북측 근로자들의 간식으로 제공이 된 뒤 맛이 있어서 북측 사람들한테 인기를 끌고 있고요. 또 장마당에서 현금으로 서로 거래가 되기도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지난해 2월 상봉에 이어서 이번에도 단연 초코파이를 몇 박스씩 준비한 모습을 볼 수가 있었고요.

이밖에 사탕이라든가 아이들 먹을 과자들 같은 경우도 많이 챙겼고요. 또 한 가지는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기 때문에 의약품들을 다들 많이 준비한 모습이었습니다. 소화제라든가 파스라든가. 그러면서 어떤 분은 일일이 용법을 다 적어놔서 오빠, 밭에 나가서 일하다가 힘들 때 이것을 붙여요.

이렇게 다들 정성스럽게 용법을 설명을 해놨고요. 또 겨울이 다가오기 때문에 내의와 양말과 또 오리털점퍼 같은 방한복들도 많이들 준비를 했더라고요.

[인터뷰]
그리고 초코파이의 경우는 지금 우리 개성공단에서 북한에 더 이상 제공 못하도록 하는 그런 조치를 내려버리고 그다음 북한에서 짝퉁 초코파이와 같은 것을 지금 생산해낸다고 해요. 그래서 북한에서 그런 것을 하고 있으니까 아마 초코파이 인기는 조금 떨어졌을 것 같아요.

그다음에 초코파이 자체도 북측에서 아마도 단속을 하지 않겠느냐. 가지고 간다고 치더라도 각 개인 가정이 직접적으로 가지고 가기에는 어렵지 않겠느냐. 사실 이런 것들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고. 저 같으면 예를 들어서 제가 가족과 상봉해야 된다, 이러면 그런 물건들을 모든 상표라든가 겉에 있는 포장을 다 떼고 실질적으로 필요할 수 있도록 이것을 차곡차곡 쌓아서 가면 오히려 더 북측 가족들한테 전달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지 않겠느냐. 제가 아까 여러 가지 화면을 보니까 준비했는데 다 우리 상표를 갖고 있고 그게 새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싶어서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있을 경우에는 아마 저쪽에서 기관원들이 상당히 통제를 하지 않겠느냐. 그럴 경우에는 오히려 가지고 가서 내 가족들한테 실질적으로 혜택이 안 될 수도 있겠다라는 우려도 사실 생깁니다.

[기자]
그런 면에서 아주 고가의 현금이라든가. 귀금속 또 고가의 양주와 화장품 이런 것들은 10만원 넘는 제품들은 사실상 가져가지 못하도록 권고를 하고 있고요.

그리고 현금 같은 경우도 최대 1500불이지만 가능한 500불을 넘지 말도록 하고 하더라도 소액권을 가지고 가라고 하던데 이것조차도 북측의 가족들에게 그대로 고스란히 전해질지 하는 부분은 여전히 좀 의문이죠. 그런 것들을 단속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뷰]
그리고 조금 더 설명이 될 수 있는 것은 사치품 문제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대북 소위 핵문제 때문에 UN안보리에서 제재 사항들이 있죠. 거기에 사치품 품목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거기에 최소한 저촉이 되지 않도록 일종의 아직까지 여유 있는 그런 제한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앵커]
그동안에 오늘로 스무 번째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진행이 되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죠. 처음에 시작할 때만 해도 단체상봉할 때 보면 동시에 울음바다가 됐었거든요.100가족 정도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 동시에 울음이 터졌는데, 그때는 다 부모, 자식 상봉...

[인터뷰]
울음바다가 될 수밖에 없겠죠. 어떤 의미에서 어안이 막혀서 울음이 안 나올 수 있겠습니다마는. 그것이 또 단체상봉이 되다 보니까 사실 분위기에 더 젖는 그런 측면도 더 있겠죠. 그래서 울음바다가 된다는 것은 지극히 예상해 볼 수 있는 점입니다.

[앵커]
지금은 좀 그런 부분들이 좀.

[인터뷰]
조금 나아졌죠.

[앵커]
부모, 자식 상봉은 이번에도 96가족 중에 5가족 정도고 나머지는 다 형제, 자매. 조금은 부모, 자식 상봉보다는 좀 덜한 것 같아요.

[기자]
형제, 자매 상봉이 77가족이니까 한 80% 정도 되는 거고요. 부모, 자식 상봉이 5가족, 그리고 부부상봉이 두 가족인데 말씀하신 대로 세월이 지나다 보니까 이산가족들이 많이들 돌아가시고 고령자만 남다보니까 부모, 자식 상봉은 볼 수 없는 것이 더더욱이 안타까운 상황이죠.

[앵커]
그래도 형제, 자매끼리 모여서 아무래도 부모 얘기도 하고 형제, 자매 간에 애틋한 옛날 얘기하면서 어떤 장면이 연출될지 궁금합니다.

[인터뷰]
특히 부모들이 먼저 돌아가셨다거나 그런데 평소에 그 부모님이 북측에 있는 가족들에 대해서 절절한 나름대로 보고싶은 마음이라든가 그 애환, 이런 것들을 자식들한테 얼마나 많이 얘기를 했겠느냐 이런 거죠. 아마 그런 것을 자식들이 북측에 있는 가족들하고 많은 전달을 하면서 눈물바다가 될 수 있는 그런 게 강하겠죠.

[기자]
이번 사연들 보면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항상 북측에 있는 형을 그리워하면서 항상 울었다, 제대로 못 드셨다. 그 가족이 돌아올까봐 집도 이사하지 않았다는 그런 얘기도 있고요. 그래서 돌아가신 부모님이지만 형제, 자매들이 만나서 그걸 추억하기 위해서 추억하기 위해서 사진들이나 여러 가지 그런 물품들을 많이 가져가서 교환을 하게 될 것이고요.

[앵커]
형제, 자매들의 경우에도 사실 보면 헤어진 동생이나 이런, 당시에 나이가 너무 어리다 보면 기억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더라고요. 집에서 부르는 별명을 이런 거를 본명으로 알고 서로 찾았는데 그러다보니까 이게 엇갈리는 경우도 있었고요. 너무 오랜 세월 떨어져 있다 보니까 그런 일이 생긴 게 아닌가 싶어요.

[인터뷰]
그렇죠. 초창기에 우리가 2000년 초반에 이산가족 상봉을 평양에서 하고 또 서울에서 하고. 그때보다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벌써 십 몇 년이 흘렀으니까 이런 가족들 자체가 벌써 나이가 들어버렸고 오히려 직계가족들은 이미 돌아가셨고. 그다음에 형제라고 하는 것이 이제 방금 얘기하는데 그때 형제라고 하면 다 어릴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얘기에 대한 직접적인 감성적인 그런 교감 차원에 있어서는 울음바다가 되는 측면에서는 좀 떨어질지 모르겠으나 그러나 아마 부모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아니면 지금 연로하셔서 말씀도 잘 못하시고 또 못 오셨거나 이런 상태에 있을 때 그 많은 얘기를 전하면서도 눈물바다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거죠.

[앵커]
정 박사님, 오늘 이산가족 상봉이 지난번 8월 25일 지뢰폭발 사고 이후에 남북합의 이후에 첫번째 단추를 낀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는 행사 아니겠습니까? 앞서서도 말씀하셨지만 이산가족들의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는 후속조치들이 마련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이 있는 것 같아요.

[인터뷰]
그러니까 8. 25합의 내용에서 단순히 일회성적인 차원에서 북측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수용했다. 이러면 큰 의미가 없어요. 물론 한 번이라도 만난다는 차원에서는 의미가 있겠지만 이것을 8. 25합의라고 하는 것을 중시할 때 또 그것을 고려해봤을 때 이제는 정례화가 돼야 된다.

그리고 또 다양하게 아까 우리 기자님께서 말씀을 해 주신 대로 화상상봉이라든가 아니면 편지로 주고받을 수 있는 생사여부를 확인한다든가. 이런 좀더 본격적이고 실질적인 그런 이산가족 상봉 혹은 여러 가지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이런 체계적인 제도적인 문제들이 본격화될 수 있는 2차 남북적십자회담을 열게 된다든가 하는 이런 데 우리가 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또 북측에 있어서도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온다면 상당한 부분 수용할 가능성도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입니다.

그 이유가 보면 사실은 김정은 체제 들어와서 8. 25 합의에 대해서도 김정은 스스로가 이 합의를 상당히 귀중하게 여기고 이것이 잘 발전될 수 있게끔하는 것을 사실 강조를 했거든요. 그렇다면 그 메시지는 앞으로 남북한 관계 개선을 해야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에 도움이 된다, 이런 판단을 했을 것 같거든요.

이것이 왜 그러냐하면 만약에 북한이 이런 이산가족 상봉행사, 이런 인도적인 문제조차도 거부를 해 버리고 또 오히려 군사적 수단, 소위 미사일 시험발사를 한다든가. 핵실험을 한다든가 이렇게 함으로써 긴장을 조성한다, 이렇게 해 버리면 사실 우리 대한민국의 김정은 체제에 대한 이런 여론 자체가 굉장히 나빠질 것 같아요.

그렇게 된다면 지속적으로 김정은 체제에 대해서 부정적인 여러 가지 방송이라든가 여론이 들끓게 되고. 이것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북한에 전달될 수 있는 가능성, 이렇게 만약에 나갔을 때는 김정은 체제도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최소한에 있어서 첫째, 남북한 관계 개선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뭔가 김정은 체제는 다르구나. 김정은 체제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여론 자체를 상당히 누그러뜨릴 수 있는, 또 우호적으로 만들 수 있는 그런 목적에 있어서도 앞으로 남북 대화는 좀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 이렇게 판단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기자]
상봉 정례화와 관련해서 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독일의 예를 들면 통일 25주년을 맞았습니다. 독일의 경우에 1970년대에 동서독 간에 서로 교환된 편지가 무려 2억 통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포 교환도 3000여 건이 넘는다. 그 정도로 서로 간에 떨어져 있지만 교류가 활발했었고요. 그리고 1950, 1960년대에 동독 주민이 매년 100만명씩 서독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같은 민간 차원에서의 교류가 발판이 돼서 통일의 초석을 다졌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런데 우리 남과 북의 가족은 그동안 서로 만난 가족만 해도 5000가족밖에 이르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상봉정례화가 정말 시급한 것인데 박사님이 말씀을 하신 것처럼 북측이 이런 인도적인 차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물론 아무런 조건 없이 나와주고 상봉 정례화에 선뜻 응해 준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게 잘 안 된다고 했을 때는 향후 5. 24조치 해제라든가 북측이 원한 금강산 관광 재개, 이런 부분과 연계시켜서 전략적으로 상봉 정례화의 틀을 만들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그런 주장들이 제기가 되고 있는 상황이죠.

[앵커]
잠시 뒤에 우리 시간으로 3시 반부터 단체상봉이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2시간 가까이 진행이 되고 있는데요. 잠시 뒤에 2, 3분 뒤에 관련 화면이 들어올 거라는 소식입니다. 지금 평양이 올해 8월 15일부터 시간을 달리 써서 말이죠. 현장하고 저희하고 30분 차이가 나서 약간 혼선이 있기도 합니다. 이번에 일정을 하는 데 있어서 30분 차이가 있어서 말이죠. 우리 시간으로 3시 반부터 행사가 시작이 된 거니까 북한 시간으로는 3시부터.

[기자]
당초 원래하던 일정대로 3시에 그대로인데 남측시간으로는 3시 반에 시작이 됐고 모든 것이 저희로 봐서는 30분이 딜레이가 된 것이라서요. 약간 혼선이 있습니다.

[앵커]
시간부터 통일 좀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인터뷰]
그게 사실 우리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통일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그런 반면에 북측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소위 김일성 조선과 마찬가지로 이런 식으로 뭔가 그런 군주국을 새로 만들어나가는 듯한 그런 식으로 해나가면서 자기들이 중심이 된 한반도. 이런 식으로 자꾸 노리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하면 우리가 남북한의 교류 협력을 통해서 협상을 통해서 통일을 이룩하자라고 하는 이런 것은 사실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아요.

사실 이런 측면에서 북측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그런 조치다, 이런 것을 인식을 하고 가급적 남북한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한테 신뢰를 줘야 되겠고 그 신뢰 속에서 남북한에 경제교류를 한다. 또 대북 경제적 지원을 한다. 이런 조치가 일어날 수가 있고.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뭔가 통일의 물꼬를 틀 수가 있고 또 기반을 마련할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런 것을 인식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북한은 이것을 가지고 무슨 흡수통일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냐. 이런 식으로 상당히 백안시 하면서 우리를 오히려 비판하고 이런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아마 북한은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이것을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김정은 시대의 어떤 새로운 실용적인 대남정책이라든가 아니면 한반도에서의 정책이라든가 대외정책 이런 것으로 나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앵커]
북한이 그 이면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계산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적어도 이번 이산가족 상봉만큼은 협조적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인터뷰]
아까 제가 얘기를 드린 것처럼 북한에 남북한 교류에 있어서 그런 필요성이 사실 있다. 그것에 대한 첫 단추가 이산가족 상봉 행사인 만큼 자기들이 보다 더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 우호적인 환경을 만든다, 이런 얘기도 또 많이 했고. 또 그것을 어떤 의미에서 우리한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번에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있어서 이전 때보다도 좀더 전향적으로 유연하게 수용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볼 수 있어요.

[앵커]
작별상봉도 예전에는 1시간만 허용이 됐었는데 이번에는 2시간으로 늘어났잖아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것도 그렇고 북측 가족의 생사 여부를 일단 확인을 해줬다는 것. 그리고 기일, 언제 사망을 했는지 하는 날짜도 우리측이 요구를 했는데 이번에도 그런 날짜도 알려주는. 계속 성의 있는 태도를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초 북측이 당창건 기념일을 맞아서 장거리로켓발사라든가 핵실험 등 위협하면서 이번 이산가족 상봉도 조금 무산시키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특히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 문제를 따로 뗀 공동성명을 처음 발표해서 북한을 과도하게 자극해서 북측이 상봉을 무위로 돌아가게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했지만 사실 이번 상봉에는 굉장히 유연한 태도로 협조적인 태도로 나오고 있고요.

이산가족 상봉이 제대로 잘 이뤄진다면 향후 남북 당국간 고위급 회담의 계기를 다시 한 번 만들어서 남북간의 현안을 다시 한 번 허심탄회하게 논의를 시작해 가는 그런 발판이 마련될지 하는 부분도 주목이 됩니다.

[앵커]
우리 시간으로 3시 반부터 시작된 단체상봉이 이제 1시간 반 정도 지나고 있는데 현장의 화면이 곧 들어온다 들어온다하면서 계속 현장이 어떤 상황인지 시간이 조금 지연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인터뷰]
예전에 한창 금강산 관광 사업 자체가 활성화되고 있을 때 같으면 아마 전체적인 송출할 수 있는 그런 장비들이 직접적으로 가고 이것을 바로 송출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돼 있었는데. 아마 오랫 동안에 우리가 단절돼 있는 상황이고 또 그다음에 금강산관광 사업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 현대의 모든 그런 것들이 중단된 상태 아닙니까? 이렇다 보니까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생긴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앵커]
예전에는 생중계로도 했었나요, 금강산에서요?

[기자]
금강산 관광 사업 관련해서 여러 차례 취재를 갔었는데 당시에는 남측의 중계차가 그대로 현장에 가서 사실 첫 단체상봉 장면을 실시간으로 생중계로 볼 수도 있었죠.

[인터뷰]
그때는 아마 제가 여기에 앉아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바로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그 화면. 그리고 또 막 부둥켜안고 눈물바다가 이뤄지는 그것을 가지고 바로 우리는 여기서 해설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런 즉각성이 있었는데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 냉각적인 분위기가 오래 간 것은 불편한 점도 많구나 하는 게 새삼 느껴지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북측도 취재진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예전에는 사실 원하는 언론사들이 다 가서 취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극도로 제한된 언론사만 가게 하다보니까 기자들이 실제 북한을 취재할 기회도 많이 없고. 예전에는 사실 2박 3일씩 두 차례 상봉. 5박 6일 동안의 이산상봉을 모두 다 같이 가서 취재를 했는데 요즘에는 그 기회가 없다보니까 1진 취재, 2진 취재도 나눠서 하고요. 남북관계가 좋아지지 않으면서 그런 여러 가지 제한들이 따르고 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인터뷰]
그리고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사실 이산가족 상봉행사, 남북한이 8. 25합의 이후에 실무적인 그런 협상을 할 때 우리 입장에서는 뭐냐. 북한이 당창건 기념일, 소위 70주년 기념일. 10월 10일 이전에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미사일 시험발사를 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됐을 때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어려워질 가능성, 그것 때문에 그 이전에 우리가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하려고 굉장히 노력을 했죠. 그런데 그것이 사실 타결이 안 되고 결국 당창건 기념일 10월 10일 이후에 20일부터도 26일까지 이렇게 결정이 됐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그 당시에는 북한이 미사일 시험 발사하지만 다른 의도가 있었지 않았느냐 하는 것을 유추 해석해볼 수가 있어요.

방금 국정원에서 발표한 것 중에 물론 중국의 만류, 그다음에 준비 미비.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저는 오히려 준비 미비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마디 드리고 싶었습니다.

[앵커]
지금 관련 화면이... 당초 3시 반에 만남이 이뤄지고 순차로 그림이 도착하면 4시 반부터는 여러분께 65년 만에 만나는 보여드릴 수 있을까 싶었는데 지금 한 30분 정도 늦춰졌고 5시 10분쯤 그림이 들어온다는 그런 소식입니다. 65년도 기다렸는데 30분 정도는 좀 기다려야 되겠죠? 잠시 뒤에 관련 화면 보면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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