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행태...김정은 리더십 의문 야기

오락가락 행태...김정은 리더십 의문 야기

2015.08.27. 오후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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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영환, 前 북한 외교관

[앵커]
우리나라로 망명한 최고위급 관리 중의 한 분이시죠. 고영환 전 북한 외교관, 국가안보전략 위원 나와계십니다.

먼저 본격적인 얘기를 하기 전에 황병서의 나이가 몇 살입니까?

[인터뷰]
나이가 지금 알려져 있는 것은 잘못 알려져 있는 거고요. 제가 1987년에 황병서가 당시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과장을 할 때 제가 병원에 30일 동안 같이 입원을 해 있었거든요. 그때 그에게 20대 중반의 딸이 있었거든요. 그러면 나이를 유추해 보면 적어도 40년생이거나 그 밑으로 내려갈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38년에서 1940년생쯤 되는 나이입니다.

[앵커]
38에서 40년생이라고요. 그러면 몇 살이죠?

[인터뷰]
70살이 넘었죠.

[앵커]
70살이 넘었다. 그런데 나이마저 이렇게 분명하지 않나요?

[인터뷰]
우리 국정원에서는 알고 있었다고 보고요. 다른 데에서 알려진 게 잘못 알려진 것 같습니다.

[앵커]
그런데 지금 알려진 것이 예를 들면 출신 성분이 뭐냐, 집안이 뭐냐, 이런 얘기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황필구라는 사람의 아들이다는 이런 얘기도 있는데 그러면 그건 사실이 아니겠네요?

[인터뷰]
북한에서 이 사람이 군에서 여단 정치위원을 하다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을 하고 그리고 당중앙회 조직 지도부 들어와서 보조지도원, 지도원, 책임지도원 과장으로 큰 사람이거든요. 만약에 저 사람의 아들이라면 저 사람이 1985년도까지 살아 있었다는 것인데요, 아버지가 남한에서 비전향 장기수로. 그러면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 저 사람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남한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으면 김정일을 당시 보좌하던 그러니까 곁에서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던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요. 그러니까 지금 장성택도 물어재낀 핵심부서에서 남한에 연고가 있으면 조직지도부에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저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앵커]
그러니까 결국 황병서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 황필구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인터뷰]
1985년도 비전향 장기수로 있다가 자살했던 사람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그러면 결국은 아버지는 누군지 모르는 거죠?

[인터뷰]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릅니다. 어쨌든 북한의 가장 핵심적인 계층의 사람인 것은 분명한데 부모가 빨치산 계열이거나 아니면 부모가 6.25 전쟁 때 낙동강까지 와서 죽은 그 장교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70은 확실히 넘었다? 다른 얘기 좀 해 보죠. 지금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김정일의 리더십, 북한에서조차도 의문이 일고 있다고 하는데 가능한 얘기일까요?

[인터뷰]
그러니까 김정일 같았으면 이런 식으로 한.미 연합훈련이 진행될 때 도발을 안 합니다. 김정일 같았으면 한.미훈련이 다 끝나고 미군이 다 돌아간 다음에 우리가 경각심을 낮아졌을 때 그때 공격을 하는데요. 저 사람은 한.미 연합훈련을 하는 도중에 포격을 했어요. 저건 그만큼 저 사람이 경륜이 모자라다는 말이고요.

두 번째는 준전시상태를 하면서 북한 전역을 들끓게 했는데요. 결국은 20일에 최후통첩을, 22일 오후 5시까지로 해놨는데 하루 전에 우리한테 회담을 하자고 제의를 했어요. 그리고 만나지 않겠다고 하던 홍용표 통일부 장관, 그 사람을 상대로 김양건 대남비서가 나오라고 하니까 이러니까 김양건 대남비서가 나왔고 김관진 실장의 카운터파트너로 황병서가 나와라, 나왔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우리 측 지역에서 한국의 통일의 집. 그게 어떤 의미냐면 회담을 북한측 지역에서 하는지 또는 남한측 지역에서 하는지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남측 지역에서 하니까 전화를 청와대에 직접 걸 수도 있고 하거든요. 저 사람들은 직접 걸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프라가 우리가 유리한 조건이니까 일단 꺾고 들어왔고 그래서 황병서가 인민군 총정치국장인데, 내가 그래도. 당신네들 통일의 집까지 온 것은 역사상 처음이고 그건 많은 것을 의미하지 않느냐. 나 좀 봐달라는 이런 이야기를 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북한이 이번에 체면을 구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앵커]
체면을 구겼다고 하셨는데요. 득실을 한번 따져보죠. 목함지뢰 도발이 사실은 맨 처음에 그 사건의 발단 아니에요.

[인터뷰]
8월 4일에 일어났죠.

[앵커]
목함지뢰 도발, 이건 득인가요, 실인가요?

[인터뷰]
북한 사람이 뭐라고 하냐면 우리가 공격을 하려면 강력한 포병 화력으로 아예 불바다를 만들어놓지 너절한 목함지뢰 서너 발을 가지고 장난을 치겠는가, 그랬는데 그게 사실로 드러나면서 결국 체면을 완전히 구기고 손해를 본 거죠.

[앵커]
이건 손해다. 그러면 준전시상태를 선언을 했죠. 일부에서는 준전시상태 선언한 덕분에 북한의 매뉴얼을 다 알게 됐다고 이런 얘기도 하던데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준전시상태를 선언을 하면서 우리 국가정보원이 이미 입수를 해서 갖고 있던 북한 준전시상태 매뉴얼이 있었습니다. 북한 극비문건이죠. 이번에 움직인 걸 보니까 그 매뉴얼대로 움직인 거예요.

그대로 딱 맞은 거예요. 잠수함 기동하고 미사일기지 어떻게 기동을 하고 전투함은 어디로 가고 그리고 포병 화력을 어떻게 한다는 것이 준전시상태 매뉴얼에 있는데 그대로 한 걸 보고 우리가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있었구나. 이건 한.미 정찰자산에 그대로 전력이 노출이 돼서 엄청난 손해를 본 거죠.

[앵커]
그것도 엄청난 손해다. 계속 손해네. 그러면 우리한테 대화를 하자, 이렇게 먼저 제의를 했어요. 우리가 황병서 나오라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나왔어요. 이건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우리가 통통회담이라고 많이 하는데요. 그러니까 통일부, 북한의 통전부 그 라인을 살리려고 우리가 계속 그랬는데요. 우리 통일부 장관이 회담에 나오라고 김양건을 부르니까 작년까지 뭐라고 했냐면 그대로 북한 말로 표현을 하면요. 우리 대남담당 비서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데 남조선의 통일부장관 나부랭이가 뭘 만나겠다고 하느냐, 이렇게 말했던 게 북한입니다. 이게 공식 발언에서 나왔던 말이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홍용표 장관이 김양건 나와라, 그랬더니 김양건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김관진 실장이 나는 김양건을 만나지 않고 황병서하고 이야기하겠. 그랬더니 황병서가 나왔어요. 그리고 저 회담이 진행된 장소가 남측 지역입니다.

그리고 최후통첩을 줬는데 최후통첩이 가기 하루 전에 회담을 제의한 것 자체가 정말 북한으로서는 아니면 김정은으로서는 정말 체면을 구긴 거죠. 대단한 손해죠.

[앵커]
대단한 손해다. 어쨌든 남북 접촉 결과. 일부에서는 유감표명 이런 표현 때문에 재발방지 약속을 받았느냐, 논란이 됐는데 이거 어떻게 보세요?

[인터뷰]
혹시 교수님 어떤 나라 대표하고 회담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앵커]
저는 안 해 봤죠.

[인터뷰]
제가 북한 외교관을 할 때 외국 대표다하고 공동 커뮤니티를 만들려고 많이 이야기를 해봤는데 한 자, 두 자 가지고 48시간 밤을 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이번에 북한이 북측은 지뢰도발 사건에 유감을 표명했다는 거는 외교적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사과 표명입니다. 북한이 만약에 여기에서 요구하는 것처럼 사과를 했다면 북한 정권의 체제를 송두리째 흔드는 겁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수령 통치체제이고 수령은 무오류, 오류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사과를 했다는 것은 너가 봐라, 똑바로 통치를 못했다는 거 아니냐. 이렇게 수령 체제 자체를 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이라는 나라에서 사과라는 말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1968년 청와대 사건 이후에 김일성이가 1972년에 이후락 부장한테 그때 사과를 했다고 그러는데요.

그건 비공개 회담에서 사과를 어떤 식을 했냐면 내가 시킨 것이 아니고 좌경 맹동분자들이 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들을 처리했다, 이 말도 틀린 소리입니다. 김일성이가 유감을 표시했고요.

맹동분자라고 하는 김창봉, 허봉학 이런 두 사람이 1969년에 반당 종파분자로 몰려서 처형이 됐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 때문에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고 이제까지 북한이 자기 주체, 우리는 이런 것을 잘못했으니까 유감을 표시한다고 이렇게 해 본 역사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그 두 번째에 비정상적인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다. 비정상적인 사태는 누가 판단을 합니까? 한국 정부가 판단을 하는 거예요.

만약에 핵실험을 한다고 하면 그래서 비정상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시작한다. 그래도 북한이 아무 말도 못하는 거거든요. 가장 두 가지 점으로 볼 때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낸 것이고 유감을, 북측이라는 주어를 넣고 유감을 받아낸 것은 북한으로서는 굉장한 손해입니다.

[앵커]
대내 결속은 어떻습니까?

[인터뷰]
대내 결속이 이거는 약간 까리까리한데 북한에서 지금 말이 돌고 있는 게 이런 것 얻어내자고 우리가 소란을 떨었느냐. 라고 두 번째는 김정일 있을 때도 계속 준전시상태라고 하다가 끝났는데 이번에 그냥 그러다 만 것 아니냐. 억지로 본다면 이익이 될 수는 있었겠다. 그러니까 억지로 붙여서 이익을 봤다.

[앵커]
대외관계는 완전히...

[인터뷰]
대외관계는 온 세계에 북한이라는 나라는 믿지 못하겠다는 걸 보여줬고 두 번째, 중국이 바로 20일 당일에 연변시에 탱크와 자주포를 전개를 시켰거든요.

이거는 유사시에 한미군이 올라갈 때 북한을 도와서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북한한테 까불지 마라. 네가 까불면 우리가 중국에서 밀고 내려갈 거야, 이런 것 때문에 이번에 항복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앵커]
그러면 손해.

[인터뷰]
완전 손해.

[앵커]
지금 대내결속이라는 부분이 이익이다. 지금 선군절을 맞이해서 무도회를 열었다고 하거든요. 이 와중에. 일단은 화면으로 어떤 무도회인지 알아보시죠.

[인터뷰]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대원수님께서 선군혁명 영도를 시작하신 51돌과 청년들을 경축하는 조선 인민군 군인들의 무도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인터뷰]
지금 이 시각 여기 경축 무대 장만이 아닌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뜻깊은 서군 절을 경축하는 끝없는 환희가 넘쳐나고 있는 것입니다.

[인터뷰]
정말 저렇게 경축 분위기가 고조될수록위대한 김정일 대원수님의 선군혁명 천만리가가슴에 안겨와 눈곱이 젖어옵니다.

[앵커]
지금 분위기 좋아요.

[인터뷰]
8월 24일까지 우리를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렁대다가 그다음 날이 바로 김정일이가 선군정치를 시작했다는 51돌이 되는 날이거든요. 그러니까 전국이 춤판으로 변했어요. 정말 변덕이 죽끓듯 하는 나라가 북한인 것 같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자기네들이 이런 손해가 나는 걸 덮기 위해서 이런 걸 하는 거 아닙니까?

[인터뷰]
그렇죠. 더 명절 분위기로 전환을 시킨 거죠.

[앵커]
그렇다면 또 한 번 도발의 가능성은, 어떻게 보세요?

[인터뷰]
도발 가능성은 당창건 70돌인 10월 10일에 미사일 발사 가능성은 제가 보건대 거의 99%고요. 핵실험 가능성도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한 3할 정도는 된다. 그러니까 도발이 또 되면 우리는 확성기 방송을 또 시작하면 됩니다.

[앵커]
그렇죠. 비정상적인 사태니까 그렇죠. 잘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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