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통령 방해하는 천인공노할 동생 아니다"

"나는 대통령 방해하는 천인공노할 동생 아니다"

2015.07.31. 오후 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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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

[앵커]
지금,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 전화연결 돼 있습니다. 박 전 이사장님 나와 계시죠?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박근령입니다.

[앵커]
지금 상당히 여러 가지로 논란이 되는 그런 발언 내용 때문에 주목을 받고 계신데. 먼저 이번 대담은 어떻게 성립이 된 건가요? 이게 시간이 짧기 때문에 간단히 답변해 주십시오. 저희가 오래 말씀을 나눌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없습니다.

[인터뷰]
종전 7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즈음해서 인터뷰를 요청해 온 거죠. 한일국교정상화를 추진하셨던 아버지의 딸로서 아들도 있지만 제가 어떤 일로 일본을 다니다 보니까, 남편 그쪽 공화당을 통해서 일단 연락이 온 겁니다.

[앵커]
당을 통해서 왔다, 이 말씀이신데요. 그런데 제가 좀 여쭤볼 것이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던 발언들이요, 예를 들면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에 관한 발언. 그리고 일본군 강제 성노예에 관한 발언, 이런 발언들이 지금 언론에 보도됐던 것이 왜곡되거나 본인 발언의 취지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언론이 잘못 받아썼다. 이런 부분이 있습니까?

[인터뷰]
항상 시간 제한이 있어서 충분히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루어졌을 때의 상황이 잘 설명이 안 된 상태에서 위안부 얘기도 나오고 하니까 단어 몇 개 이렇게 해서 많이 공격을 하시더라고요. 완전히 마녀사냥이 됐어요. 그래서 조금 아까 제가 자주 보는 분들이셔서 굉장히 우익의 아이콘으로 제가 많이 존경하는 신 교수님도 거기 나와 계시고 옛날에 돌아온 저격수다에서 많이 뵀는데. 그 말씀을 하시는 걸 잠깐 들었어요.

저는 단지 지금 아베 정부는 아베 총리 자체가 우리가 옛날에 아버지 살아 계실 때 저 사람이 용공분자였다, 그러면 그 아들까지 연좌제로 그냥 처리를 했어요. 그래서 저희 아버지 정부를 엄청 이렇게 공격하는, 야당에서. 그런 경험을 제가 어렸을 때 했습니다. 그렇다면 저희 아버지 시대는 직접 식민치하를 겪은 분들이에요, 그분들이, 또 가해자들이 다시 20년 후에 1945년에 해방이 됐죠. 그리고 아버지가 태어나자마자 해방되고 일제가 시작된 게 아니라 28살 때, 아버지가 1917년생이시니까요. 그때 해방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 20년 후인 1965년에 한일간의 공개를 정상화하고 이렇게 우리가 추진력을 도모해 미래로 나가자. 이렇게 했던 이 시대가 바로 식민치하에서 직접 겪은세대인데 아베 총리는 할아버지 얘기가 나오지만 태어난 겁니다.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죠. 그래서 계속 연좌제로 밀어붙여서 할아버지가, 너희 조상이, 이렇게 나가면 다음 세대에서 과연 한일국교정상화를 추진하셨던 그분들의 취지였겠느냐. 세월이 흘러도 다른 역사는 그대로 연속성과 영속성 있게 단절되지 않아야 되잖아요. 제가 일본과 가까웠을 때 우리나라가 고도성장을 했거든요.

국민들이 또 저희 아버지에 당시 반대도 많았지만 애국심을 밀어주시고 같이 동참을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시대를, 그 민족의 서사시를 쓴, 얼마나 외국에서 부러워합니까? 새마을운동을 배우러 오잖아요. 그런 데다가 특히 미국과 싸운, 미국과 일본이 싸웠어요.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국도 지금 국무성에서 발표하기를, 오늘도 나오더라고요. 위안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건 참담하고 끔찍한 인권침해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지난 번에는 그러면 야스쿠니신사참배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러니까 그건 국내 문제다, 물론 지금 일본에서 문제되고 있는 1급 전범은 분리해서 유해를 안치하자. 이런 것은 또 할 수가 있겠죠.

[앵커]
시간관계상 정리를 해 주시죠.

[인터뷰]
그래서 저는 그런 뜻에서. 우리 경제가 파탄에... 일본 관광객은 말할 것도 없지만 신오쿠보라는 한국거리, 완전히 한국타운 같은 데의 상권이 다 죽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가 정부에서 이런 것을 신경을 써서. 그분들도 말하자면 61만명이 되는 그분들도 대한민국 국민이죠.

[앵커]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재일일본인들과 여러 가지를 생각하신다는 말씀이신데.

[인터뷰]
재일 적자가 너무 많이. 이건 한국경제에도 위배가 되지 않습니까?

[앵커]
시간관계상 제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랑 자주 전화하세요?

[인터뷰]
저는 청와대 근처도 안 가는 사람이에요.

[앵커]
청와대 들어가기 전에는 그러면 연락을 자주 하셨나요?

[인터뷰]
저는 정말 저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나라를 위하는 데는 애국가 4절과 같이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나라 사랑하는 데 무슨 남녀노소가 필요하고 여야가 필요하겠습니까. 저도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그러나 저도 많은 격려전화를 많이 받았고, 일본 교포는 말할 것도 없지만 한국에서도, 지금도 계속 메시지가. 그러면 우리 대통령 각하께서는 아, 이런 얘기를 내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정책과는 좀 다르지만...

[앵커]
시간관계상, 죄송하지만 결론을 여기서 내야 될 것 같습니다.

[인터뷰]
제가 만나고 저에게 이렇게 격려메시지를 넣는 분들도 분명히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세요. 그래서 우리 대통령께서 어떤 동생이 하시는 일을 방해한다는 그런 천인공노할,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의견도 있습니다. 너무 언론에서는 막 싸우려고만 하는 미운 이웃이라고 하는, 나라가 이사도 못 가는데 그러면 전쟁을 할까요. 저는 지금부터 한미일, 우리 안보는 생각 안 하십니까? 저는 북한이 핵을 만들 기 전에 한일 국교정상화를 했는데.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 시간관계상, 말씀의 취지는 저희가 전달을 받은 것 같습니다. 말씀 여기까지만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죄송합니다. 휴대전화로 하다보니까 신 앵커님의 소리가 잘 안 들려서 제 말만 드려서 죄송합니다.

[앵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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