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총리의 격동의 62일

이완구 총리의 격동의 62일

2015.04.21. 오후 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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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총리가 어제 밤 자진 사퇴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최근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여론이 악화됐고, 여야 할 것 없이 밀려오는 압박은 총리로서 큰 부담이었을 겁니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순방으로 자리를 비운 10일 동안 과연 이 총리가 어떠한 결단을 내릴지에 관심이 모아졌는데요.

62일 만에 사의를 표명하면서헌정 사상 최단기 총리로 기록될 것으로 보입니다.

총리 임명에서 자진사퇴까지 파란만장했던 이완구 총리의 62일을 되돌아보겠습니다.

지난 1월 23일 이완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무총리로 지명됐습니다.

당시 이완구 총리는 소통의 가장 중요한 대상은 야당이라며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는 총리가 되겠다고 각오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정국에서 야당과의 좋은 파트너십을 보여준 이완구 총리, 야당역시 환영의 목소리를 냈었는데요.

당시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은 완생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이완구 국무총리 지명자를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환영의 인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야당은 이완구 총리 후보자를 본격 검증에 들어갔는데요.

[인터뷰:이완구, 국무총리 지명자 시절]
"내가 공직에 가기위해서 비정한 아버지가 됐나 하는 그런 생각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파요"

당시 이완구 총리는 모든 의혹에 증거를 제시하며 '자판기' 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계속된 의혹과 말바꿈에 인사청문회 특위 역시 난항 끝에 문을 열게 됐는데요.

이때가 파국의 시작이었을까요?

이완구 후보자 인사청문회 첫날이었습니다.

이날 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건 이완구 총리후보자의 '언론 외압' 의혹이었습니다.

[인터뷰:김경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일회성의 실수가 아니라 이것이 평소에 가지고 있는 습관화된, 내재화된 언론관이었고 이런 것들이 반복적으로 돼서 언론과 관련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터뷰: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과거 저의 인터뷰에서) 신문은 내가 세상을 보는 창이다. 시책을 만드는 데도, 사고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33년 공직생활의 동반자가 바로 신문이다(라고 밝혔고)…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정확한 언론관을 갖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인터뷰: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강의는 한 10여 차례 했지만, 강의가 전부가 아니고요, 석좌교수로서 우송대에 한 천5백 명 정도의 외국인 학생이 있습니다. 그 외국인 학생들에 대한 강의 내지는 관리 내지는 매니지먼트를 했던 것으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그 다음날 인사청문특위 이틀째입니다.

증인신문에서 강희철 충청향우회 명예회장이 나와 "충청도에서총리 후보가 나왔는데 계속 호남 분들이 한다"는 발언을 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때부터였을까요?

당시 충청도 거리에가면 이런 플랜카드가 붙여져있었습니다.

충청총리 낙마되면 다음 총선 대선 두고보자! 마치 이완구 총리가 충청민심을 대변이라고 하듯 이런 문구가 야당을 위협했는데요.

하지만 이때 이 사건이 지금 상황의 복선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그리고 지난 2월 16일 국회의원 281명 중 찬성 148명, 반대 128명, 무효 5명으로 이완구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가결 되면서 본격적으로 국무총리 업무에 돌입했습니다.

이날을 운명의 날이라고 해야 할까요.

3월 12일, 이날의 발표가 이완구 총리의 앞날에 엄청난 후폭풍을 불어올줄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바로 부패와의 전면전 선포였는데요.

[인터뷰:이완구, 국무총리]
"저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습니다. 정부는 모든 역량과 권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구조적 부패의 사슬을 과감하게 끊어내겠습니다."

정부는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며칠뒤인 18일, 경남기업 압수수색을 시작으로4월 6일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이틀뒤인 4월8일 성완종 전 회장의 기자회견이 있었는데요.

당시 성 전 회장은 "2007년 한나라당 후보경선에서 박근혜 후보 당선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억울함 호소했지만 그 누구도 그의 말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성완종 전 회장은 스스로 목숨을 거둔채 발견됐습니다.

성완종 전 회장이 자살직전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폭로한 정치권 인사들의 금품제공 메모가 공개되면서 정국은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됐습니다.

그 중심엔 이완구 총리가 있었는데요.

성완종 전 회장이 2013년 4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때 지원금 명목으로 3000만원을 줬다고 폭로하면서 이완구 총리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됐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부인해 왔었는데요.

이완구 총리의 오락가락 발언은 그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습니다.

[인터뷰:권은희, 새정치연합 의원]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변은, 모 언론에 이러한 보도가 됏는데 2012년 10월 23일 성완종 전 회장을 서울 메리어트 호텔에서 만나 식사한 사실이 없다, 이것입니까?"

[인터뷰:이완구, 국무총리]
"네, 지금 이 사진입니다. 이 사진이 이게 제가 9, 10월 달 머리가 다 완전히 빠졌다가 다시 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인터뷰:권은희, 새정치연합 의원]
"몸이 안 좋으실 수록 잘 식사를 하셔야 하는데, 그래서 답변이 제 질문에 대해 답변을 예, 아니오로 해주신다면 만난 사실이 없다 입니까?"

[인터뷰:이완구, 국무총리]
"저는 만난 사실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권은희, 새정치연합 의원]
"지금까지 13, 14일 기억에 번복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만난 사실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인터뷰:이완구, 국무총리 ]
"없습니다. 제가 이런 상태에서 성완종이라는 사람을 죽음을 앞에 놓은 사람이 뭐하러 만나겠습니까."

오락가락하는 이완구 총리의 발언은 여야 할 것 없이 의혹을 증폭시켰습니다.

민심이 요동치자 박근혜 대통령은 김무성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들여 긴급 회동을 가지기도 했는데요.

박근혜 대통령은 순방을 다녀온 이후 결정을 내리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남미 순방길에 올랐고 순방 4일만에 이완구 총리는 스스로 자진사퇴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인터뷰:이두아, 전 새누리당 의원]
"우선은 야당에서 해임건의안을 오늘 정도에 발의를 하겠다는 입장을 취한 데다 여당에서도 초재선 의원 모임, 그러니까 해임건의안을 야당에서 발의해서 가결하는 데 필요한 인원이 한 14명 정도가 됐는데요. 그 초재선 모임에서 야당에서 해임건의안을 발의하면 여기에 대해서 찬성을 할 생각이 있다라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사실상 여당에서도 자진사퇴에 대한 압박이 강해졌습니다. 그런데 수사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오는데 이완구 총리가 말바꾸기, 의혹 이런 부분뿐만 아니라 수사와 관련돼서도 증인들에 대해서 오염을 시키는 게 아닌가, 회유나 협박, 보도가 있으면서, 그 보도의 사실관계는 확인을 해 보아야겠습니다마는 여론이 굉장히 나빠지고 있기 때문에 여롱의 압박이 점점 강하졌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완구 총리의 대망은 62일만에 일장춘몽으로 끝이 났습니다.

충청 총리를 낙마시키면 안된다고 으름장을 놨던 충청 민심 역시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의 표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데요.

안타깝기는 해도 총리의 계속된 말 바꾸기에 대해 실망이 있었을 겁니다.

[인터뷰:이완구, 국무총리]
"어떠한 증거라도 좋습니다. 어떠한 증거라도 만약 이완구가 망인(고 성완종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증거가 나오면 제 목숨을 내놓겠습니다."

자신이 돈을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걸겠다고 말했던 이완구 총리.

과격한 발언을 통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고 싶었을 텐데요.

결국 총리자리를 스스로 내놓고 최단기 총리로 남게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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