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출신 김종훈 의원이 말하는 역대 한미관계

외교관 출신 김종훈 의원이 말하는 역대 한미관계

2015.03.06. 오후 2:11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앵커]
한미FTA 협상할 때 우리 쪽 대표였고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정통 외교관 미국에 있는 우리 대사관에서도 근무를 했었던 경험이 있는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을 저희가 오늘 초대했습니다. 왜 불렀는지, 왜 초대했는지는 아마 아실 겁니다. 어서오십시오.

[인터뷰]
반갑습니다.

[앵커]
한미관계를 걱정하는 분도 있고요. 조금 전에 길정우 의원이 현지에서 말씀을 하신 것을 보니까 그렇게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게 지금부터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미국에 대해서는 제일 많이 아시는 그리고 미국인들, 특히 미국과의 외교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제일 많이 아시는 분 아니겠습니까, 의원님이. 어제 소식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인터뷰]
어제 이 사건을 보고 처음에는 딱 두 가지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정신이 이상한 분이 왜 이렇게 많은가. 정신병자인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요. 둘째는 외국 대사관을 초청한 행사장에 대사에 대한 경호, 경비가 이렇게 허술할 수 있을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요.

나중에 행위를 했는 김기종 사람의 전력을 보고 자유와 시민운동이라는 탈을 쓴 반미종북 세력의 폭력성 이게 여기까지 이르렀는가 하고 정말 우리 사회에 이런 것에 대한 경감식을 다시 한 번 가져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앵커]
아까 국회에서 저희 김웅래 기자가 전해 온 기사를 보니까 여야 간의 온도차가 있거든요. 여권에서는 철저하게 배후를 밝혀야 된다는 것이고 야당은 그 사건 자체는 있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종북, 아직은 특정 한 사람이 한 것이고 이것이 무슨 세력이 한 거라고 볼 근거는 아직 안 나왔고요. 그런 야당의 지적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배후가 있느냐 없느냐는 결국 수사를 하면 나오겠죠. 그래서 배후가 있다면 그거는 분명히 거기에 따른 응당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고 수사한 결과 이것이 결국 단독범행이었다고 하면 그것으로서 마무리를 해야 될 그런 사건은 사건으로써 특성이 있다고 보고요.

다만 이런 종북 활동하는 분들의 어떤 선을 넘은 폭력성,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경각심을 가져야 된다고 말씀을 드린 게 우리가 늘 통일 논의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제 북한과 대치를 하는 마당에서 이번에도 행사를 한 단체가 민화협이더라고요. 민족화해협력 그런 걸 추진하는 시민단체죠.

그런데 우리가 북한을 생각할 때는 늘 세 가지는 종합적으로 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북한을 다스리고 있는 3대 세습 독재 세력, 그다음에 둘째는 그 밑에서 신음하는 북한의 인민들이요. 그다음에 셋째는 북한이 가지고 있는 군사력. 이 세 개가 각각 따로따로 봐야 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늘 우리가 아무리 민족의 동결성을 회복해 보자. 또 화해협력을 해 보자고 하지만 3대 세습의 독재 세력과 우리의 가치를 수용하기 위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가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이런 가치를 우리가 절충할 수는 없는 거거든요. 그거는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합니다.

둘째로 독재세력 밑에서 신음을 하는 북한 백성들을 위해서는 우리가 뭔가는 할 수 있죠. 그러니까 흔히 이야기하는 인도주의적인 협력 아니겠습니까? 그간에 여러 번 했었는데요. 사실 그런 우리의 좋은 마음이 우리가 주고자 하는 분들한테 가지 않고 다른 데로 돌아가거나 또는 몇 명 안 되는 위정자의 배를 불리는 데 쓰이거나 이런 것은 우리의 목적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되다가 중단이 되다가 하는 과정을 겪고 있는데요. 저는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려서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서는 우리가 같이 형제애를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다음에 마지막에 군사력인데요.

우리가 그간에 북핵, 비핵화를 위해서 오래 노력을 했지만 결국 작년 12월에 국방부에서 나온 국방백서에서도 북한이 결국 핵무기를 소형화하는 데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 또 북한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춘 것 같다는 사실을 실었거든요. 그게 우리의 안보현실입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대응해야 될 부분이 있고 이거는 분명히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고 국제사회 전체가 협력을 해서 해결해야 될 문제거든요. 그래서 이 세 가지를 막 섞어서 혼돈을 하다 보면 해답이 잘 나오지 않아요.

[앵커]
알겠습니다. 한미 관계로 다시 돌아와서요. 미국인들이 진짜로 이 사건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 것인가, 어떻게 인식을 하고 있을 것인가, 그걸 어떻게 보셨습니까?

[인터뷰]
그 입장을 바꿔서 우리 대사가 바깥에서 이런 일을 당하면 우리 국민들이 정말 분하고 억울하겠죠. 또 그 나라에 대해서 원망하는 마음도 들지 않겠습니까? 아마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리라고 봐요.

그런데 참 다행스러운 것은 양국 정부가 굉장히 발빠르게 움직여서 이것이 어떤 부정적인 여론으로 확산되는 것은 지금 많이 차단되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하면 결국 국가 간 관계라는 것이 국민 서로가 어느 정도의 호감을 갖고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기반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거기에 어떤 사건으로 해서 호감도가 떨어지거나 계속 악화가 되면 기반이 굉장히 흔들리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것은 사건은 일어났고 아주 불행한 사건이지만 빨리 차단이 되고 해서 전반적인 한미관계 또 동맹관계의 영향이 없도록 그렇게 만들어가는 건 당연하고요.

저는 이번을 계기로 해서 결코 우리가 이 정도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의 동맹관계가 이 정도를 가지고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결속이 강화될 거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앵커]
어제 우리 정부도 빠르게 대응을 했고 여야가 또 한목소리를 냈고 우리 국민들이요. 인터넷 댓글들을 달린 것을 쭉 봤는데요. 그걸 보니까 참 한마음으로 이렇게 응원도 하고 미안해하고 그런 것을 보니까 국민들이 참 이번에 큰 역할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저는 들더라고요.

[인터뷰]
아마 그런 과정에서 저도 리퍼트 대사가 한국에 오자마자 4번 정도 만났거든요. 따로 1:1로 만난 것은 아니고 소규모로 밥도 먹고 해 봤는데요. 굉장히 활동적이고 한국에 대해서 호감이 많아요. 또 본인 스스로 가까이 다가가려고 굉장히 노력을 하시는 그런 것을 제가 직접느낄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중요한 거는 늘 적는 습관도 갖고 있고요. 그런데 이분이 이렇게 당하고도 병원에서 바로 나는 괜찮다. 금방 회복 될 것 같다, 빨리 돌아가서 일하고 싶다. 같이 갑시다, 이렇게요.

[앵커]
참 쉽지 않은 일인데요, 그 상황에서.

[인터뷰]
굉장히 용기가 있는 분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저게 트위터에 올라왔기에 저도 이렇게 답글을 달았습니다. 빨리 쾌유를 하시라고요.

[앵커]
역대 우리나라에 왔었던 미 대사들이 간접적으로 아시는 분도 있고 직접 만나보신 분도 많고 그렇죠?

[인터뷰]
그렇습니다. 저는 외교관 생활을 오래 했지만 미국 대사를 실무선에서는 자주 볼 기회는 잘 없어요. 어느 정도 직급이 올라가서 중요도가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겠죠. 저는 통상교섭본부장을 할 때 당시 버시바우라는 미국 대사는 거의 일주일에 두세 번 만나야 될 그런 상황이었고요.

그때 쇠고기 문제도 해결해야 되고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자주 만나뵀고 리퍼트 대사 전임이였던 성 킴 대사님. 그분은 또 한국 출신이지 않습니까. 이제 사적으로는 우리 말도 잘하시는데 늘 공식석상에서는 영어를 하셨죠.

[앵커]
원래 우리 말을 잘 합니까, 성 킴 대사관님?

[인터뷰]
저같이 합니다. 지금도 다시 한반도 문제를 위해 돌아와 계신데요. 그분도 한국에 대한 애정이나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셨어요. 그다음 리퍼트 대사님은 제가 이렇게 뵈니까 전에는 몰랐지만 쭉 미국 의회에서 정치권 보좌관 활동을 많이 하셨더라고요.

그런데 리퍼트 대사께서 보좌관으로서 쭉 모셔왔었던 상관들, 소위 상원 의원들과 하원 의원들이요. 주로 상원 의원들인데요. 대부분 한국에 대해서 특별한 감정을 갖고 계신 분들이었어요. 파인슈타인 상원의원도 그렇고요.

제가 쭉 그 경력을 보니까 이분들이 대부분 한국하고 특별한 애정을 갖고 계신 분들하고 같이 계셨구나. 아마 그것이 본인이 한국에 대한 갖게 되는 여러 가지 생각을 오랫동안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앵커]
역대 대사 중에 우리 국민들이 제일 많이 기억하는, 대중적으로 많이 기억하는 인물들이 제 기억에는 글라이스틴, 옛날에 80년대 초반의 글라이스틴 대사도 있었고 그뒤에 도널드 그레그 대사도 기억이 남고요. 힐 크리스토퍼 대사님도 있었고. 이분이 글라이스틴 대사군요.

[앵커]
저분이 아주 우리나라에서 격동기 때 계셨죠?

[인터뷰]
대부분 저런 격동기 때 계셨던 분들은 우리가 오랫동안 군사 독재를 했다고 역사책에 쓰고 있지 않니까? 그럴 때 미국 대사들이 동맹국에 특히 미국 대사로서 오해받는 대목들이 몇 번 있었습니다. 특히 광주사태가 일어나고 했을 때.

[앵커]
그때 저분 이였죠?

[인터뷰]
맞습니다. 그때 굉장히 어려웠을 겁니다.

[앵커]
또 다른 도널드 그레그 대사...

[인터뷰]
저분은 다리가 조금 불편하셨죠, 요즘도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던데요.

[앵커]
최근에는 북한에 대해서 포용이랄까요? 어쩔 때는 옹호를 하는 그런 발언들을 해서 우리 보수층에서는 좀 비판하는 목소리들도 나오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이 대사에 대해서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리는데 북한을 다룰 때는 조금 이렇게 구분을 해서 거기에서의 집권층과 우리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또 그 밑에 있는 북한의 보통 국민, 백성들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

또 군사력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을 할 거냐. 이런 것들이 각각 종합적으로 나와야 될 것 같아요. 이걸 다 흐트러서 북한이라는 글자 두 개를 가지고 다루기는 너무 문제가 복잡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앵커]
초대 대사는 존 무초 대사요. 그 분이 한미 관계의 초석 같은 걸 놓은 그런 분인 거죠, 존 무초 대사요. 외교가에서는 존 무초 대사를 어떤 기억으로 갖고 있습니까?

[인터뷰]
첫째가 6.25전쟁 그때 당시죠.

[앵커]
이승만 대통령하고 같이 계시네요.

[인터뷰]
저분은 뵌 적이 저는 없고요. 늘 기록속에서 봤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건국 시기이니까 미국이 우리한테 베푸는 나라로서 즉 원조, 또는 전쟁에 몰입된 나라로서 또 동맹국으로서 전쟁을 지원해야 되고 또 군대를 불러와야 되고 하는 그런 역할을 하신 거죠.

그래서 아마 우리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그런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앵커]
우리 현대사에서 계속 기억돼야 될 이름일 것 같습니다. 존 무초. 최초 여성 대사는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 캐슬린 스티븐스를 만나보셨나요?

[인터뷰]
만나뵀습니다. 최근에도 본 적이 있고요. 평화봉사단 활동을 하는 게 한국과의 인연이라고 하네요.

[앵커]
중학교에서 가르치고 그랬다고 하죠.

[인터뷰]
예산 중학교입니다. 그래서 저도 우리는 캐시라고 부르는데요. 볼 때 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왔었던 미국 평화 봉사단 선생님이 계셨어요. 그분하고 인상이 비슷해서요. 그 이익을 많이 나누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앵커]
한미 관계가 이렇게 돌아보면요. 대체로는 좋은 때가 훨씬 더 많았지만 몇 군데 그 위기의 순간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한미 관계 위기 순간들은 어떤 때가 있었는지 한번 저희가 그래픽으로 보겠습니다. 1976년에 코리아게이트, 77년에 주한미군 철수계획이 발표된 적이 있었고요.

2002년에는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촛불시위가 타올랐고 2008년에 쇠고기 수입협상이 있었고요.

[인터뷰]
아마 저것 말고 80년대의 광주사태도 굉장히 어려운 대목이었죠. 1980년 때요.

[앵커]
그래서 어쨌건 우리가 지금까지는 저 위기의 순간들을 극복을 하고 그래서 다시 한 번 한미관계가 공조해지고 그런 부침이 있었단 말입니다. 의원님이 보시기에는 이런 위기의 순간에 제일 펼친 게 무엇인지 어떻게 그걸 타고 넘어가야 되는 것인지요?

[인터뷰]
긴 시계로 해서 역사라고 해서 도표로 보여주지 않으셨습니까? 양국관계가 튼튼하려면 양국 국민들의 호감도가 올라가야 된다. 그 기본에는 국민들이 호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나눌 수 있다는 가치가 있어야 됩니다.

생각이 완전 다르면 그거는 위장된 관계로밖에는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서로가 아주 중요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할 때 호감도가 생길 수 있고요. 그러면 제일 중요한 가치가 뭐겠느냐. 인권에 대한 존중 그다음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가치 그다음에 시장경제를 하겠다는 그런 가치들이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그런데 한미 관계가 부침이 있었다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보면 우리가 쭉 민주화 되어 오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로서의 숙성도가 아직도 조금 미숙했을 때 저런 사건들이 많았죠. 그것을 보면 지금 우리사회가 산업화도 되고 민주화도 됐다고 자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한미관계가 전과 같지 않게 좋아졌다는 데 제일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기반이 흔들리지 않는 이상 다시 양국관계가 나락으로 간다든지 어려워진다든지 이런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가치가 뚜렷하고 국민들 간에 그걸 기반으로 호감이 서로 나아갈 수 있는 정도라면 관계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앵커]
30초 남았는데 의원님, 지금까지 미국하고 협상을 하면서 겪어보면서 이 나라는 이런 나라구나, 이런 사람들이구나라고 짧게 정리해 주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인터뷰]
미국은 굉장히 실용적인 나라죠. 그다음에 말을 하면 실천을 하려는 실천력이 있어요. 그래서 누구는 그게 카우보이 정신이라고 하는데 저 사람들은 총기 소지도 자유화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총을 딱 냈을 때는 그냥 무슨 목적이 있어서 내 놓고 또 내 놓는다면 반드시 쏘거든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무서운 겁니다. 그러니까 말을 함부로 하지 않지만 말을 할 때는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나라라는 그런 생각을 제가 갖고 있어요.

[앵커]
의원님은 과거에 사무라이하고 카우보이하고 협상을...

[인터뷰]
저는 일본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요. 제 스스로는 카우보이라고 하지는 않고요.

[앵커]
그냥 이미지 때문에 그랬죠? 사실은김영란법 반대한 유일한 4명의 의원 중 한 분이셔서 그것도 여쭤보고 싶었는데 시간은 다 돼서 그것은 다음에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
다음에 또 불러주십시오.

[앵커]
감사합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