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최측근 이동관이 말하는 이명박 회고록 논란

MB 최측근 이동관이 말하는 이명박 회고록 논란

2015.01.30. 오전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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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출간 되기 전부터 논란에 휩쌓였습니다. 재임 시절 다뤘던 현안에 대한 각종 비화를 거침없이 공개했기 때문인데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회고록 작성에 직접 참여한 분입니다. 전 청와대 홍보수석 이동관 디지털 서울문화예술대 총장에게 정치권에 일고 있는 회고록 논란에 대한 입장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바로 질문 드리죠. 왜 지금 시점에 출간을 하려고 결정을 하셨습니까?

[인터뷰]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밝혔지만 원래는 오래 전부터 준비를 해 왔던 것이기 때문에 작년 가을에 출판할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거예요. 목표를 갖고 했는데 완성도를 좀 높이자, 그리고 역시 이런 저런, 지금 민감하다고 얘기하는, 뒤에 제가 설명을 드리겠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서 입장을 좀 정리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 때문에 조금 늦춘 거죠, 오히려 사실은.

그러니까 꼭 여기에 맞췄다기보다는 타이밍이라는 게 언제가 빠르고 언제가 늦느냐 하는 것은 참 주관적이기 때문에 어려운데 자원국조가 시작되리라는 것은 그때는 알 수가 없었고, 책이라는 게 한번 출판 과정의 컨베이어벨트에 올라가면 돌이킬 수가 없잖아요.

그다음에 한 가지만 얘기를 들면자꾸 빠르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미국 같은 경우에 보면 부시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에 2년 한 3개월인가 뒤에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2년 3개월 뒤에 결정의 순간이라는 책을 냈어요.

그런데 미국이야 우리와 문화가 다르니까 민감한 얘기 많죠, 거기도. 자기 정책 걸정에 대한. 이라크전이라는 게 얼마나 엄청난 사건이었습니까? 미군이 4000명이 죽고, 수십만명의 민간 부상자가 난 엄청난 사건인데. 게다가 조작 논란도 있었잖아요, 심지어. WMD. 화학무기가 있느니, 없느니.

[앵커]
대량살상무기.

[인터뷰]
저희가 조금 더 그런 면에서는 민감성이 높은 나라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일단 4대강과 자원외교에 대해서 국정조사 얘기가 오가기 전부터 추진됐던 회고록이다라는 말씀을 주셨고요.

[인터뷰]
길게 보면 제가 마지막 특임대사할 때 국정백서를 만들어서 이런 정리를 하면서 내용적으로 그때부터 이미 준비를 한 거였어요. 거의 2년 반이 넘었죠.

참모진분들이랑 같이 좀 만들었다고 하셨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오타까지 검수할 정도로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섰다고요?

[인터뷰]
물론 워낙 치밀하시니까 그렇게 했지만 저희가 항상 매주 화요일날 모여서 어떤 현안해서 토론을 하면 관계되는 장관, 수석 이런 분들이 다 와서 그 펙트는 틀렸다. 그건 그렇게 하면 그렇게 하지 말자. 이런 난상토론이 벌어지고 그랬어요.

[앵커]
이 과정에서 봉숭아학당 얘기도 나왔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하는 거는 봉숭아학당 아니냐는 얘기가 농담조로 나왔는데 그게 아마 회고록에도 그런 얘기들이 담겨 있죠. 그러니까 과거에 회고록이라는 게 대체로 본인의 일방적 구술 그리고 그거에 바탕해서 책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국내외의 모든 회고록이 그런 식이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조금 그런 방식을 동원하셨던 것 같아요.

여러 참모들 조언을 듣고... 그런데 이번 같은 경우는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하나하나 사안에 대해서 정리를 했다. 저희는 처음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너무 각을 다 빼서 막상 편했는데 밍밍해가지고 재미없다는 얘기가 나올까 봐 그래서 일한 거. 주로 정책 위주로 하자.

그리고 지금 정치적 논란이라고 얘기를 하셨지만 정치적 논란이 될 만한 일은 예를 들어서 2007년 경선과정 얘기라든가 2008년에 공천 뒷얘기라든가. 좀 민감한 얘기지만.

[앵커]
친이, 친박이 당시에 첨예하게 대립했던 시절 거는 좀 많이 뺐다.

[인터뷰]
그런 얘기 또 그다음에 노무현 대통령 수사 문제라든가 진짜 민감한 것들은 아예 다루지를 않았잖아요.

실제로.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2, 3년 뒤에 따로 정리를 해서 숙성을 더 시켜서 하자. 그런 뜻에서 다 뺐기 때문에 처음에는 오히려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너무 이렇게 밍밍해서 재미없다는 얘기 들을까 봐.

[앵커]
이게 좀 실례가 되는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마는 이런 과정을 거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화자찬이라는 비판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거든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인터뷰]
실례될 게 없죠, 왜냐하면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참회록을 써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담담하고 겸허하게 썼다고 하지만 그런 입장에서 보면 자화자찬으로 보이는 거죠. 그건 보는 입장이니까.

그러나 저희가 이런 저런 반응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마는 그러니까 그거를 다 읽어본 사람들. 지금 출간이 안 됐지만 다 읽어보신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은 비교적 담담하고 솔직하고 그리고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한 것 같다. 왜냐하면 주로 정책을 한 거니까.

[앵커]
알겠습니다. 그러면 책의 내용을 갖고 지금부터 하나하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오늘 청와대에서 입장을 밝힌 것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게 세종시 수정안에 박근혜 대통령이 그 당시에 왜 반대를 했느냐에 대해서 저희들이 그래픽 준비되어 있죠.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된 대통령의 시간과 관련된 내용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돼 있는지 한번 정리를 해 드리죠. 내가 세종시 수정으로 정운찬 총리 후보자를 여당 대선후보로 내세우려 한다는 의심을 샀다. 당시 차기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 반대 이유도 이와 무관치는 않다.

결국 정운찬 총리 후보자를 견제하기 위해서 반대안을 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얘기를 담고 있거든요. 이거에 대한 배경설명을 해 주시죠.

[인터뷰]
우선은 세종시 수정안. 당시에 삼성이니 한화니, 대기업들의 연구센터 같은 것들이 옮겨가는 계획이 다 담겨 있었고. 그다음에 고려대학교 같은 데서도 분교 세우겠다. 교양학부. 이런 계획들이 다 담겨 있었기 때문에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그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그리고 정부가 이렇게 나뉘어져서 비효율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그런 측면에서 미련이 많았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서 쓴 것이고요. 다만 이제 당시의 상황은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 문제, 청문회 때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를 해서 그게 전국 이슈가 됐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그때 정치적으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건 사실이죠. 그렇기 때문에 오늘 청와대의 반응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하는 얘기가 주조거든요, 사실은. 그런데 혹시 그런 오해가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다는 얘기였지 그래서 이거를 반대하는 데 주된 이유였다 하는 차원에서 얘기를 한 건 아니고...

그거는 내용을 읽어보면 큰 줄기의 곁가지였는데 그걸 갖고 자꾸 논란이 확산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청와대에서 그런 문제를 거론하는 게 우리나라와 국민, 또 당의 단합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인터뷰]
그건 있을 수 있는 지적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언급을 서로 안 하면 되죠. 그걸 갖고... 사실 지금 안타까운 것은 자꾸 일각에서 이 내용을 갖고 이를 테면 지금 현 정부와 저희를 나쁘게 얘기하면 이간질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자꾸 문제를 그쪽으로 초점을 모아서 하는데 제가 모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진짜 정치적 민감성 있는 얘기는 전부 다 사실 뺀 거다.

2, 3년 뒤에 준비해서 쓰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은 진짜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사안이라고 판단하는 거는 전혀 이번에 안 다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쪽 보시면 거의 80% 이상이 정책 결정 얘기잖아요. 외교나 아니면 금융위기 극복. 그 나머지는 더 많아요.

[앵커]
그리고 또 한 번 내용 살펴보겠습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 남북관계 비화에 대한 내용인데요, 저희가 주요 내용을 발췌를 했습니다. 그래픽 함께 보겠습니다. 북한 얘기죠.

북한 김정일이 5차례 넘게 정상회담을 제안을 했었고, 이때 100억 달러와 비료 30만톤 등 경제적 지원을 요구해 와서 정상회담을 거부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앵커]
이때 청와대에서 그때는 대변인 하실 때였나요?

[인터뷰]
대변일할 때도 있었고 홍보수석할 때도 있었고 또 중요한 당시 원자바오 총리가 남북정상회담 중재하는 모임이라든가 싱가포르에서 당시 노동부장관 하던 임태희 장관이 만나고 돌아와서 보고하는 자리에는 저도 있었죠.

[앵커]
그러면 임태희 장관이 김양건 부장을 만나고 왔는데 북한에 가면 죽습네다, 이렇게 얘기를 했다.

[인터뷰]
그건 저도 회고록 보고 처음 들었는데요.

[앵커]
두 분이 따로 있었을 때...

[인터뷰]
뭐 아무래도 그랬겠죠. 저희 때는 협상 경유를 쭉 설명하면서 지금 나중에 회고록에도 밝혀진 이러이러한 조건을 요구했다 하는 얘기들이 나오길래 저희가 저희가 그 당시에 다 한목소리로 반대했죠. 대통령도 물론 마찬가지고. 왜냐하면 과거에 우리가 남북정상회담 뒷거래 하면서 비판이 많습니다.

나왔는데 그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그리고 허심탄회하게 우리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핵문제까지 논의를 한 다음에 그다음에 핵문제에 대한 해결에 진전이 있다든가 남북 화해가 진전이 되면 비핵개방 3000달러 다 기억하시겠습니다마는 북한의 소득 수준을 거기까지 올려주겠다고 했는데 뭘 못하겠느냐.

다만 이런 것을 전제로 해서 부속문서에 이면합의를 하자든가 그런 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건 안 된다고 얘기하라고 한 거죠. 당연히 당당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남북정상회담이 어느 정도까지 깊이 있게 진전이 될 뻔 했었는지.

[인터뷰]
사실은 구부능선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뭐냐하면 그때 만약에 그래, 지원해 줄게. 그렇게 했으면 만났을 거예요. 그리고 그 뒤에도 또 회고록에 나오지만 천안함 폭침에 대한 포괄적인 유감 표명을 받아들였더라도 아마 성사가 됐을 거예요.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평소에도 그런 얘기를 계속 하셨지만 남북정상회담 안 하는 것도 내 업적이 될 수 있다. 왜 거기에 목매서 의미없는 남북정상회담. 회담을 위한 회담은 안 하겠다는 입장이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

멀쩡하게 어뢰로 군함을 폭침시켜서 우리 군이 죽었는데 동족간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유감이다. 이걸 갖고 사과라고 하면서 정상회담을 하라고 하면 제가 생각하기에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감히 말하면. 그러니까 당연히 거절한 거죠.

[앵커]
연평도 포격도발 직후에 북측에서 비밀특사를 내려보냈다고요.

[인터뷰]
여러 가지 물밑접촉이 있었죠.

[앵커]
그때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자고 했는데 대통령은 만나주지 않았고요.

[인터뷰]
그거는 실무적으로 얘기가 다 담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북에서 내려와서 만나자고 그러면 아무나 만나는 사람입니까, 대통령이? 의미가 있는 메시지를 갖고 또 의미가 있는 합의가 이뤄져야지 만약에 만났다는 자체로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 있잖아요.

왜 만났는지 뭐를 얘기했는지가. 그러니까 그건 만났다, 안 만났다는 중요한 펙트가 아니라지 생각해요.

[앵커]
그리고 못 만나고 북한에 갔는데 결국은 처형을 당했다.

[인터뷰]
그건 나중에 들은 거죠. 나중에 미국 정보당국을 통해서. 그런데 확인해 보면 외신쪽에서도 일부 그런 비슷한 보도를 했더라고요.

[앵커]
일본에서 보도가 있었죠.

[인터뷰]
그래서 그거는 맞는 것 같다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인데 그 진상이 정확하게 뭔지는 저희도 뭐 거기까지는 알 수가 없죠.

[앵커]
그런 남북관계의 세세한 물밑접촉 사안 하나하나를 공개하면서 오늘 청와대의 반응이 국익에 과연 도움이 되느냐. 남북관계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지적을 했거든요.

[인터뷰]
청와대의 오늘 그 반응은 저도 얘기를 들었는데 정확하게 얘기를 하면 그런 일들이 있었다니까 좀 놀랍다라는 쪽에 가까운 거지.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취지의 얘기는...

[앵커]
우회적으로 얘기한 건가요?

[인터뷰]
그렇죠. 우회적으로 얘기한 거지만 회고록을 남긴 이유는. 정치적으로 뭘 겨냥하거나 의도를 갖고 했다기보다는 지금 앞으로 예를들면 남북관계면 남북관계에서 이런 부분들은 조심해야 하고 앞으로 규율해 나갈 때 참고를 해야 한다. 쉽게 얘기하면 5년의 국정을 맡는다는 건 그래도 엄숙한 사명 아닙니까?

비판과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그러나 이것만은 그래도 후세를 위해서라든가 다음에 올 분들을 위해서 이거는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해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을 한 거고 한마디 보탠다면 남북관계도 진짜 중요한 많은 얘기는 아직도 잠겨 있습니다.

그러니까 뭐가 세세한 건지는 판단도 어렵다, 저는 보고. 외국 정상들 회고록을 보세요. 심지어 말다툼한 것까지 쓰는데 뭐가 공개됐다 안 됐다 지금 또 도움이 된다, 안 된다고 하는 거는 저는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왜, 북한이 평소에 어떤 어프로치를 하느냐. 그러면 그 사람들의 전략과 전술을 꿰뚫어보고 대응을 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 거를 국민들도 알아야 된다는 측면에서 회고록에 할 수 있는 최소한까지만 그것도 여기까지 만 하고 토론을 해서 물론 내부에서 외교라인에서 일했던 분들은 조금 덜 쓰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여기까지 하자 저기까지 하자 했던 것이 아니고 그것도 나름의 어떤 토론의 결과였다는 것으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앵커]
몇 분 정도가 토론에 참석을.

[인터뷰]
보통 상시적으로는 대여섯 분 정도 고정 멤버가 있었고. 이제 예를 들면 남북관계 사안이나 아니면 금융위기 극복 관련된 사안이 있으면 해당 당시 라인에 있었던 장관, 수석 그다음에 녹색성장 그러면 유명한 김상협 녹색성장 기획관. 이렇게 들어와서 주로. 왜냐하면 기억이라는 게... 자기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저도 느꼈어요. 제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도 내가 그렇게 들었던 것 같은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까 조금 차이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그런 의미에서.

[앵커]
그래서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인터뷰]
집단 기억으로 이거를 되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저희가 봉숭아학당 소리가 나올 정도로 토론을 한 겁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하나 더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쇠고기협상과 관련된 건데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얘기가 나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과 마무리짓기로 여러 차례 약속하고는 처리하지 않고 떠났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래픽 함께 보시겠습니다.

[앵커]
노 대통령은 미국과 약속했다는 점은 시인을 했습니다. 하지만 향후해야 한.미FTA 재협상 때 쇠고기 협상을 조건으로 자동차 재협상을 유리하게 가져가라고 조언했다. 이런 내용이 회고록에 담겨 있습니다.

[앵커]
이게 어떤 내용입니까?

[인터뷰]
사실은 저도 그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다만 임기 초기에 이런 말씀하시는 걸 들었죠. 이번에 저희가 이거를, 논란이 될 수 있는 사안이잖아요. 저희쪽에 관계되는 모든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해서 한 겁니다. 그러니까 당시에 배석했던 임태희 실장. 그다음에 그 앞에 관련돼서 일했던 분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거의 정확한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당시 쇠고기파동 한.미FTA는 굉장히 뜨거운 감자였거든요. 2008년의 광우병 사태 역시 노 전 대통령쪽에 책임이 있다라고 보시는 의도로 쓰신 건지.

[인터뷰]
아니요. 사실은 그때도 저희가 공개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하지 않은 이유는 금도의 문제다. 왜 전 정권 탓하는 걸로 비춰질까 봐. 그래서 사실은 제가 대변인할 때 그 비슷한 브리핑을 했다가 한번 호된 공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제가 얘기한 건 설거지론이었거든요. 앞의 정권에서 벌였던 일이고 우리가 마무리하면서 설거지한 것이다.

그랬더니 그때도 전 정권 탓한다고 그랬는데 실제로는 이런 회고록에 나온 얘기들을 대개 알고 있었지만 마무리하고 가기로 약속했지만 뒤집어서 이렇게 진행이 됐다 하는 거를 공개할 수 있었으나 안 한 이유는 정말 그러면 전 정권 탓하는 것 같아서 안 한 거예요.
[앵커]
그래서 당시 대변인으로서 선택했던 용어가 설거지로 한 거였는데.

[인터뷰]
거기까지 한 거죠.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그것도 저희가 아마 그 부분에 관련된 분들도 한 7, 8명 이상 찾아가 면접 인터뷰를 해가지고 한 거라고 저는 알고 있어요.

[앵커]
노 전 대통령측에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을 하잖아요.

[인터뷰]
사실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거는 그 회담에 들어가지도 않았다는 거잖아요. 뭘 근거로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지 궁금하네요.

[앵커]
당시에 노무현 대통령 시절과 이명박 정부 시절을 같이 한·미FTA와 소고기 협상을 했던 양쪽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분들 얘기도 다 들었던 겁니까?

[인터뷰]
물론이죠. 그러나 그분들의 명예일 수도 있고 그것 때문에 저희가 다 일일이 적지 않은 거죠. 그 당시에는 광우병 때문에 상황이 심각한데 거기다 대놓고 공개하면 그건 금도에도 어긋나거니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거는 우리가 일단 안고 가자 그랬던 겁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자원외교와 관련된 부분이 있습니다. 책에 있는 내용 바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앵커]
퇴임한 지 2년도 안 된 상황에서 자원외교를 평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내용입니까?

[앵커]
그리고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단일 공사로는 건국 이래 최대의 역사라고 할 만큼 공사 규모가 컸다. 세계금융위기로 경제살리기가 시급한 상황에서 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을 허비할 여력이 없었다. 설명을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우선은 앞 부분.

[앵커]
자원외교.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인터뷰]
지금 논점은 그거 아닌가요? 한승수 총리가 주도해서 한 걸로 떠넘겼다. 그건데. 그것은 사실은 당시에 한승수 총리는 원래 그 앞에도 상공부장관도 하시고, 자원외교에서 전문가예요. 그런 의미에서 발탁했다는 거는 총리 지명 사실을 발표할 때의 브리핑에도 들어 있어요. 그리고 본인도 해외에 자원활동을 위해서 많이 다니셨고 스스로 자원총리를 자임하셨어요. 잘 안 알려져 있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UAE 원전수주 할 때도 원래 프랑스에 계약 체결이 돼 있던 거를 저희가 막판에 뒤집었거든요.

[앵커]
대통령이 순방했을 때.

[인터뷰]
네덜란드 순방 때 전화를 해서 잠깐 기다려라. 스톱시켜놓고. 그 특사단장으로, 그때는 총리에서 물러나셨었죠. 한승수 전 총리를 단장으로 한 특사단이 가서 종합브리핑을 하고 설명을 한 거예요. 물론 매듭은 나중에 직접 가서 이명박 대통령이 하셨지만 UAE 원전수주 400억달러. 그렇기 때문에 그런데 그 얘기는 총리실이 중심이 돼서 실제로 했던 것도 또 어느 정도는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청와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않았느냐 하는 논란 속에서 떠밀려 그런 게 아니고, 실제로 공기업이나 민간기업이 하는 거를 뒤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히 정부부처에서 중심이 돼서 했던 것이고, 청와대는 큰 틀에서 이게 국가적 과제니까 자원 자조 개발률 저희가 6, 7% 되던 거를 저희가 13% 대로 올린 거는 사실이거든요. 그런 과정에서 문제가 없을 수야 없겠죠.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 국가적 과제로써 자원외교를 수행해 가야 한다고 하는 어젠다 세팅을 했던 것은 맞지만 세세한 일은 일단은 부처와 총리실이나 이런 데가 중심이 돼서 움직였다는 일을 얘기를 한 건데 그게 마치 책임을 떠넘겼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앵커]
시간이 없어서 짧게 하겠습니다. 최근에 논란이 되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그러면 나라도 나서서 설명해야 되는 거 아니냐, 이런 언론보도가 있었거든요.

[인터뷰]
그러니까 간단히 말씀을 드리면 거리낄 것이 없지만 또 문제는 우리가 해명할 일 있다고 재판정이 나가지 않잖아요. 문제가 있어서 진짜로 책임져야 될 일이 있다면 당연히 나갈 수 있죠. 그러나 전직 대통령을 무조건 국가적 정책과제로서 그걸 수행했다고 그래가지고 청문회 불러낸다는 건 그건 정치문화나 또 우리 전통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 측면이지 무슨 거리낄 게 있어서 못 나가겠다, 이런 건 절대 아닙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시간이 한 20초밖에 안 남았는데요. 아까 말씀하신 내용, 많이 줄였다, 많이 줄였다 했는데. 한 2년 뒤에 대통령의 시간, 2편이 나옵니까?

[인터뷰]
네, 그렇게 될 거니까 그때 한번 지켜 보시죠. 이번에는 아주 정책결정 과정에 우리가 꼭 알려서 도움이 돼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만 절제해서 겸허한 마음으로 한 거다라는 것만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릴게요.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이동관 전 홍보수석.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총장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앵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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