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남한으로 송금을?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한서희, 탈북 배우]

북한에서 남한으로 송금을?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한서희, 탈북 배우]

2014.08.28. 오후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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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나라에 온 탈북자가 생계가 어려운 북한의 가족을 위해 생활비를 보내는 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 반대현상이 있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에서 오히려 형편이 어려운 남한 동생에게 돈을 보내줬다는 건데요.

만약에 이 말이 사실이라면 북한에도 개인 재산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 아닐까 싶습니다.

자세한 내용 세계북한연구센터의 안찬일 소장, 그리고 탈북배우 한서희 씨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이 내용이 대북매체인 데일리NK에서 나온 보도가 있어서 보도의 신뢰성에 조금 의구심도 있는데요.

우선 관련 주제어를 보시겠습니다.

[앵커]

북한 주민이 탈북자에 역송금했다는 내용인데요.

함경북도에서 가전제품을 팔고 있는 자매들이 탈북을 해서 남한에 있는 동생이 생계가 어렵다, 이런 얘기를 듣고서 생활비를 송금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번에 1만 위안, 약 165만원 정도되는 돈을 모두 4번에 걸쳐서 송금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앵커]

우리나라에 온 탈북자가 생계가 어려운 북한의 가족을 위해서 생계비를 보내는 일은 흔하게 볼 수 있는데.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났는데 이례적인데 이런 이야기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안 소장님?

[인터뷰]

저도 조금 확인을 해 봤습니다마는 거의 신뢰성이 있다.

이렇게 볼 수 있는데 문제는 이 여성의 언니들이 청진에 있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고 또 본래 출신은 북송교포 출신입니다, 일본에서 건너간.

그러니까 씨드머니, 종잣돈이 있는 사람들이고 장사를 하다보니까 돈을 많이 벌었고, 동생이 또 애초에 중국으로 건너와서 마약도 하면서 돈을 벌어서 또 자기 언니들 장사하는 데 보태준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여기 와서 한국에 오면 이게 41세의 여성인데 사실 이 나이가 공부하기도 그렇고 뭐하기도 그렇고 어중간한 나이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정착이 잘 안 돼서 언니들한테 콜했더니 거기서 돈을 보내줬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고.

거의 탈북자 중 2만 7000명 중에 최초이고 유일한 일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봅니다.

[앵커]

사실 이게 165만원씩 4차례면 660만원 아니겠습니까?

700만원에 가까운 돈이면 우리나라에서도 크지만 북한에서는 오히려 더 크지 않을까 싶은데.

[인터뷰]

북한에서는 엄청난 돈이죠.

[앵커]

그런데 장마당이라는 시장에서 일을 하면서 이렇게 큰 목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건가요?

[인터뷰]

북한에도 신흥부자들이 고난의 행군 뒤에 90년대 말부터 많이 등장했는데 실제로 중국에서 들어오는 식량이나 또는 생필품을 도매로 넘기는 사람들, 평안남도 평성시나 청진이나 도매로 넘기는 사람들은 상당히 목돈을 많이 만져서 신흥부자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흥부자들의 경우 보통 장마당에서 노점상하는 게태반인데 그것을 도매로 하거나 상권을 장악한 사람들인 경우에는 그렇게 큰 돈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장마당은 몇 군데나 있어요?

[인터뷰]

지금 장마당은 각 도나, 시나.

심지어 평양이나 주변 도시에 보면 아파트 단지별로 우리 한서희 씨도 잘 알겠지만 메뚜기 장사라 그럴까요.

장사 펴놓고 하다가 단속 나오면 도망치고 또 다른 데 가서 하고 어쨌든 북한은 지금 노동당이 배급이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에 장마당이 없으면 북한인민들이 다 굶어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앵커]

한서희 씨도 장마당 많이 보셨습니까?

[인터뷰]

네, 그렇죠.

매구역마다 시면 시, 구면 구.

매 구역마다 장마당이 다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평양시에 있는 장마당 같은 경우에는 장마당 하면 원래 예전에 북한에서 11일장에서 농산물만 팔게 되어 있는 장마당이었는데 이제는 뭐 중국 제품, 일본 제품, 남한 제품, 없는 게 없이 다 나와 있는데 특히 수입제품 같은 경우에는 달러로 많이 팔고 있기도 합니다.

[앵커]

그런데 그게 공식적으로 허용이 된 건가요?

아니면 불법으로 그냥 파는 건가요?

[인터뷰]

불법이 많죠.

장사하지 말라라는 품목이 너무 많아요.

일단 담배도 팔라고 할 때도 있다가 못 팔게 할때도 있고 쌀은 정상적으로 팔게 하고요.

그외에도 의류 같은 건 수입은 절대 못 팔게 되어 있는데 상표를 다 뗀다든가 몰래몰래 뒤에서 팔게 한다든가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앵커]

평양에서 사셨죠?

평양에 장마당이 몇 개 정도있는 것 같아요?

[인터뷰]

글쎄요, 매 구역마다, 매 동마다 다 있으니까 셀 수 없이 수십 개는 되죠.

큰 장마당이 또 있는데 통일거리에 있는 평화시장 같은 경우 우리 동대문에 있는 시장 거의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거기가 처음으로 현대적으로 장마당이 건설됐는데 지붕이 있는 장마당이 건설되는 거는 통일거리에 있는 평화시장이 제일 최초였습니다.

[앵커]

이번에 북한에서 남한으로 송금을 했다는 거는 여러 가지 시사하는 점들이 있는 것 같은데요.

북한에서는 사실 사유재산이 허용되지 않는 게 원칙일 텐데 말이죠.

이게 충분히 가능해지고 있는 그런 상황으로 봐야 되는 겁니까?

[인터뷰]

그렇습니다.

북한의 보통 근로자들의 월급은 북한돈으로 3000원 내지 4000원밖에 안 됩니다.

이것은 보다 조금 높은 북한군 중좌가 받는 월급이 5000원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이게 실제로 장마당에 나가서 물가를 비교하거나 달러로 계산하면 1달러가 채 안 되는 겁니다.

최고 높은 단위가 돈이 5000원인데 중좌가 월급 한달인데.

그게 1달러도 채 안 된다.

그게 일반 주민들 당국과 연계된 돈은 거의 휴짓조각이나 마찬가지고.

말씀하신 대로 장마당에서 일단 이 상품을 장악하고 판매하고 이게 떼돈을 버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돈 번 사람들은 평양시나주요 도시에 아파트도 다섯 채, 여섯 채 사는 겁니다.

사서 사놨다가 또 대목에 가서 넘기고 이래서 돈 버는 놈은, 재주 가진 놈은 계속 벌고.

그래서 평양시에 280만인구의 100만불, 한 10억 가진 사람이 0. 7% 된다 이런 통계가 나올 정도로 빈익빈부익부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앵커]

그게 북한 전체적으로 그런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요, 아니면 평양이나 이런 데?

[인터뷰]

평양이나 평성이나 청진 대도시 위주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고, 지방에 가면 아무래도 빈부격차는 덜 하지만 아직도 띨띨한 사람들은 굶어죽고 그래서 고난의 행군에 눈 돌아가는 사람들은 다 탈북해 버리고 순진한 놈은 다 굶어죽고 아까 우리 한서희 씨도 얘기했지만 여우나 늑대는 살아남고 토끼나 노루는 다 죽는 겁니다.

[앵커]

실제 한서희 씨도 경험해 보셨겠지만 빈부의 차이가 요즘 들어서 많이 납니까?

[인터뷰]

네, 굉장히 많이 나죠.

일단 정말 순진하고 정말 나라에서 배급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직도 굶어죽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속에서 돈이 많이 사람들은 그 돈 많은 것을 이용해서 또 일부 장사하는 사람들은 조직 생활을 일주일마다 해야 되는데 그것도 돈을 주고 시간을 부여받아서 그렇게 살아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돈 있는 사람들 간부들한테 줘서 더 큰 장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아서 그러다 보니까 그 사람들은 더 잘 살 수밖에 없고, 아랫사람들은 힘없는 사람들은 아직도 굶어죽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빈부차이가 여전히 계속 되고 있는데요.

제가 아시는 중국에서 오신 분인데 북한이랑 연계되신 분한테 물어보니까 아직도 북한이.

지금 김정은 시대여서 많이 풀어지지 않았냐라고 하는데 풀어진 게 아니라 예전보다 더 체제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주민들을 더 많이 조여서 장사하기도 어렵고 정말 힘든 사람들이 여전히 굶어죽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앵커]

그렇게 돈을 벌어서 중국이나 남한에 있는 가족들한테 돈을 보낸다면 이게 바로 보낼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송금을 하려면.

중국을 거쳐야 되고 여러 단계를 거치다 보면 수수료도 많이 붙을 것 같아요.

[인터뷰]

한 30% 정도 나간다고 보면 되는데요.

남한에서 북한에 100만원을 보내면 북한에는 70만원도 못 미치게 들어가는데 그것도 70만원이 안 되는 이유가 환율에 따라서 남한돈으로 중국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달러로 환산해서 보내다 보니까 그 달러에서 환율에서 떼어먹고 중국 사람이.

그중에서 북경 경비대라든가 브로커한테 떼이다 보면 30% 넘게 떼이고 들어가는 경우가 있죠.

[앵커]

안 소장님, 그동안 탈북한 탈북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크게 보면 남한이 더 잘 살고 자유롭고 해서 탈북했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남한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 이런 얘기도 나온다면서요?

[인터뷰]

그렇죠.

이제 바로 이번 역송금을 통해서 이런 말들이 나오고 있는데 역송금 사례를 통해서 뭔가 중요한 두 가지 점을 개선해야 되지 않을까.

그중에 하나는 이게탈북자 정착 문제가, 사실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탈북자들에 대해서 대학 공부도 시켜주고 혜택이 많습니다.

또 북한지원재단을 만들어서 연간 한 260억 정도의 돈을 정부가 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한테.

그런데 그게 결국 이런 사람들, 정착 못 한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혜택이 안 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지 대한민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잘못해 줘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 저는 그렇게 보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또 2만 7000명 탈북자들의 대부분 의견입니다.

따라서 이런 지원재단을 정부가 만들어 놨으면 그런 재단이 제대로 탈북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서 역송금이 일어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저희가 볼 때도 어떻게 북한에서 남한에 돈이 오느냐.

이런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고 사실 우리 탈북자들이 북한에 송금해 주는 돈이 지금 북한이 사회계층을 형성해서 북한체제변화에 기폭제가 돼야 된다는 상황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앵커]

얘기가 나온 김에 북한주민들이 남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좀더 자세한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남쪽에 대한 적대감이 강해졌다는 건데요.

남한 사회에 대한 인식이 협력대상으로 생각한다는 퍼센트가 2013년에는 63. 9% 로 상당히 높았는데 2014년에는 55. 7% 로 8. 2% 포인트가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적대적인 대상으로 본다는 시각이 2013년에 12. 8%에서 올해는 20. 1%로 8. 7% 포인트가 높아졌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보면 그만큼 부정적인 인식이 많아졌다는 얘기가 되겠죠.

[인터뷰]

부정적인 인식이 많아졌다는 것도 간략히 두 가지 인데 하나는 남북관계가 차단되다 보니까 우리가 어떤 식량지원, 비료 지원, 이런 것들이 북한의 피부에 닿게끔 하는 게 지원되는 게 끊겼으니까 그런데서부터도 오고.

또 북한이 최근에 키리졸브라든지 을지프리덤가디언이라든지 이런 데 대해서 상당히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북한사람들은 당국의 선전을 아직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런 측면이 있기 때문에 대남 적개심이 높아진 이유는 바로 거기서 찾아야 될 것 같습니다.

[앵커]

남한에 대한 적대적인 의식이 팽배해질수록 김정은 정권에 어떤 영향을 줄 것 같습니까?

[인터뷰]

아무래도 정권 다지기에 좋은 영향이 가는 거죠.

그래서 또 아까 원장님께서 얘기하셨듯이 남북한 관계 차단문제도 있지만 또 거기에 추가적으로 재입북, 탈북한 사람들이 강연을 다닙니다, 전국적으로.

자기들이 남한에서 겪었던 일들을 체제선전에 많이 동원되고 있는 거죠.

그런 얘기들과 탈북자들의 실제 전화를 통해서 그 얘기들이 비슷한 점이 있다라고 보면 그런 것들이 사실화가 돼서 북한에서는 우리가 드라마에서만 바라보는 환상적인 남한이 아니고 남한에 가면 그냥 돈을 쉽게 벌 줄 알았더니 굉장히 살기가 힘들구나라는 걸 그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그런 시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남한에 대한 적대적 인식은 남북한의 문제에 더 냉정적인 그런 영향이 끼치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앵커]

앞서 북한에 얼마 전까지 있었던 분까지 통화를 하셨다고 하는데 북한 내부에서 체제를 공고히 하는 작업들이라든지 이런 건 효과가 어느 정도있다고 보시나요?

[인터뷰]

효과가 사람들이 우리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못되지 않기 위해서, 잡혀가지 않기 위해서 눈치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거죠.

그래서 특히 탈북자들을 막기 위해서.

김정은 체제 들어와서 탈북자들이 급격히 줄어들었거든요.

그래서 탈북자를 막기 위해서 국경의 차단을 강화하고 포대를 설치한다든지 굉장히 삼엄한 분위기를 만들어놓고 있습니다.

[앵커]

우리 이 시점에서 정보의 정책적인 변화, 이런 게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인터뷰]

탈북자정책,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정부는 돈을 쓰는데 그것이 직접적으로 탈북자들에게 배분이 안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참 너무 거창한 이야기인지 모르겠는데 국가개조를 한다면서 공기업에 관피아, 정피아 줄이자고 하지만 실제로 탈북자 지원재단에도 제가 볼 때는 관피아, 정피아가 아직 거의 개조가 안 되고 있습니다.

이런 건 정부가 개조를 해서 모든 정부의 혜택이 2만 7000명의 탈북자들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북한에서 돈이 와서 역송금이 이뤄진다.

이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재단에서 재원을 좀더 투명하게.

[인터뷰]

투명하게 배분하고 거기에 보면 비만한 인력유지라든지 거기에서 탈북자들이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것이 자칫 정부에 대한 비판이 비화되지 않게끔 조정하는 게 필요하다는 거죠.

[앵커]

한서희 씨는 몇 년도에 탈북하셨습니까?

[인터뷰]

저는 2007년도에 왔습니다.

[앵커]

완전히 정착 하신 겁니까?

[인터뷰]

완전히 정착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저도 아직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특히 저 같은 경우에는 젊어서 그나마 흉내라도 내면서 따라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들이라든가 또 친구들 중에 부모님이나 오빠들, 이런 사람들 보면 남성들, 특히 가장으로서 남성이 일자리도 없고, 살기 힘드니까 굉장히 가장의 자리, 위치가 낮아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저희 엄마 같은 경우에도 어디 가서 일을 하려고 해도 말투 때문에.

조선족이냐 이런 물음에 조금 당황하시거나 또 자신감이 줄어들어서 나가서 일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같은 젊은이들은 말투도 금방금방 고칠 수 있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남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일하기는 무리수가 사실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점들이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서 굉장히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세계북한연구센터의 안찬일 소장, 그리고 탈북배우 한서희 씨였습니다.

두 분 말씀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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